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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막초의 재활용
버리기엔 아까와서 하나둘씩 모아 놓은 초도막이 이젠 거의 한 상자가량이나 되었다.
“이것들을 어디다 써? 너무 작아서 불이 켜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재민이는 상자 속을 뒤지면서 말했다. 쓰레기를 쓸데없이 모아 놓았다는 식이었다.
“아니야. 이것을 한꺼번에 녹여서 다시 굳히면 쓸만한 초를 만들 수 있어.”
나는 잡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초 만드는 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초는 파라핀으로 되어 있데. 그래서 같은 파라핀 성분으로 된 크레용을 같이 넣어서 녹이면 색깔 있는 초도 만들 수 있다더라.”
“색깔 있는 초? 선물가게에서 파는 예쁜 초 말이야?”
재민이는 눈을 빛내며 바짝 다가앉았다. 이제서야 좀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래. 보라색이든 노란색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난, 초록색이 좋아. 우리 당장 만들어 보자. 내가 크레용은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어.”
재민이는 약간 흥분까지 하면서, 마구 서둘렀다. 그 덕분에 나도 왠지 마음이 설레었다.
분홍색 초를 선물받고 좋아할 수아의 얼굴도 떠오르고, 크리스마스에 집안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촛불의 행진도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내가 직접 만든 것으로 선물하고 즐기는 것⋯ 정말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한 번도 안해 본 일인데,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방안에 어지러히 늘어져있는 크레용 도막이며, 휴대용 가스 렌지, 양은 솥등을 쳐다보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려하니, 갑자기 불안이 밀려온 것이다.
“걱정 하지마. 전부 잘될거야.”
재민이는 아무 걱정이 없는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감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랬지? 맞아. 먼저 초를 녹이라고 했지⋯”
신이 나서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면서, 재민이는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웃음이 났다.
“그래. 네 말마따나 잘 될 거야.”
재민이의 낙천성이 전염됐는지 나에게도 조금씩 용기가 생겨났다.
“부글부글”
얇은 양은솥에서 이내 김이 나더니 초 도막들이 녹아갔다.
“이때 크레용을 넣으면 되는 거지? 무슨 색을 넣을까? 빨간색? 분홍색?”
“그래 분홍색으로 하자. 그 다음에 초록색을 하고⋯”
우리는 초물에 분홍색 크레파스를 깎아서 넣었다. 그러자 투명하던 초물은 금세 엷은 분홍색으로 변해서 퍼져 나갔다. 아름다운 진달래를 보는것 같았다.
“가만, 만약 이 초물이 굳기 전에 이 반지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재민이가 갑자기 장난감 반지를 꺼내 보이며 나를 쳐다봤다.
“글쎄? 초 안에 그 반지가 들어 간 채로 초가 만들어지겠지.”
“그렇겠지? 재미있지 않니? 반지가 들어있는 초⋯ 초가 녹으면 안에서 반지가 나오는 거야. 짜잔～하면서⋯”
“야! 그것 괜찮은 생각인데!”
정말 멋진 생각이었다. 반지나 장난감 따위가 들어있는 초⋯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것 같았다.
“나는 이 반지랑 왕구슬, 그리고 뺏지를 넣을래⋯”
재민이는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들을 잔뜩 꺼내 놓았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씨익 웃었다.
“넌 뭘 넣을래?”
“글쎄⋯”
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수아는 어떤 것을 좋아할까? 꽃? 반지? 그러나 적당한 것이 생각나질 않았다. 그때, 언뜻 냉장고가 눈에 띄였다.
“그래. 난 얼음을 넣어야겠어!”
“얼음? 얼음을 어떻게 넣냐?”
“두고봐. 아주 멋진 작품이 나올 테니!”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뜨거운 초와 차가운 얼음. 두 가지의 온도차이가 멋진 작품을 만들어 줄것 같았다.
그릇에 얼음을 채워 넣고 촛물을 부으면 촛물은 얼음이 없는 사이사이로 들어가면서 굳을 것이었다. 그리고 얼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녹을것이고. 그러면 마침내는 구멍이 숭숭 뚫린 초가 탄생될 것이었다.
“어어! 이게 뭐야?”
재민이는 나의 초를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멋지다. 얼음을 넣은 것이 이렇게 멋있게 될 줄은 몰랐어.”
“사람은 머리를 잘 써야 해.”
나는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코가 한 치나 높아진 기분이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재활용 초. 재민이와 나는 방안 가득 예쁜 초를 켜두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아직 한 달이나 남은 크리스마스가 온 것만 같았다.
=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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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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