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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화분 선반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정말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니?”
“이 창고 좀 보세요.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창고에는 정말 오만가지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여름에 쓰는 돗자리, 선풍기에다 아빠 낚시 도구, 여러 가지 공구가 가득 들어 있는 공구 상자, 사다리, 배구공이랑 축구공, 텐트 셋트, 석유 난로 등등 설명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정말 그렇구나.”
“이것들은 전부 쓸모가 있는 것들이어요. 없으면 불편한 것 들 뿐이죠. 하지만 이것들을 늘 항상 사용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너무 낭비인 것 같아요.”
“일 년에 몇 번밖에 사용하지 않는데 쓸데없이 모아 두었다는 말이니?”
“그것보다는 요 좀 더 여러 가지를 쓸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배구공을 집어 들고 푸념하듯 말했다.
“흐음⋯ 네 생각에도 일리가 있구나. 자, 그럼 네가 이 중의 하나를 개선해 보겠니? 아빠가 연구비는 대주마.”
“정말이세요?”
“그럼.”
나는 믿기지 않아서 몇번을 되풀이 하여 물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뿐인데,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좋아요. 제가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볼게요.”
나와 아빠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힘차게 흔들었다.
‘무엇이 좋을까?’
창고의 물건들을 찬찬히 살피며,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돗자리나 선풍기 같은 것은 매년 여름마다 유용이 쓰는 것이니까 놔두고⋯ 텐트나 낚시 대 같은 것은 다용도로 쓰기 힘들어⋯’
나는 한참 궁리 끝에 사다리를 골라내었다.
‘사다리는 거의 쓸 일이 없지. 그리고 조금 개조한다고 해도 별 지장이 없을 거야.’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사다리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A자 모양으로 꿋꿋하게 버티고 서있어서, 의지가 굳고 과묵한 장군처럼 보였다.
‘사다리 장군, 날 좀 도와줘. 네가 생각하기에 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매일을 창고 안에만 틀어 박혀 있으니 심심하지? 다른 일을 하면 바깥에서 즐겁게 놀 수 있을 거야.’
나의 간곡한 물음에도 사다리는 아무대답도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 넌 서 있는 것이 특기지? 그것을 최대한으로 살려보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것. 나는 그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사다리의 다리를 벌려 세워두니 그 가운데에 꽤 널찍한 공간이 생겼다. 아기들의 작은 그네정도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맞았어. 사다리의 가운데에는 아기그네를 달면 되겠구나. 안 그래도 아기그네를 설치할 마땅한 곳이 없었는데⋯’
일단 한 가지 쓰임새가 생각나자,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사다리의 발판이며 기둥들도 모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음. 사다리의 발판은 꼭 선반처럼 생겼군⋯ 그렇다면 발판의 넓이를 좀더 늘려 물건을 얹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나는 시험 삼아 작은 화분을 하나 올려놓아 보았다. 발판이 좁아서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보기에는 좋았다.
‘좋았어! 발판을 늘리면 아주 좋은 화분 선반이 되겠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두침침한 창고 속에 쓸모없이 처박혀있던 사다리가 예쁜 꽃화분을 잔뜩 짊어지고 작은 그네를 매단, 아기자기한 선반으로 변신한 것이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이 밀려왔다.
“와아! 이건 정말 기대이상인걸! 아빠는 이런 멋진 작품이 나오리라 상상도 못했어. 사다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아빠는 사다리의 그네를 흔들어 보시기도 하고, 화분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시면서 아주 즐거워 하셨다. 아빠께서 칭찬해주시니 나도 기분이 만점이었다.
“아니! 그게 사다리였어요? 정말 멋지군요. 우리 집 것도 당장 그렇게 고쳐야겠네.”
담 너머로 우릴 지켜보시던 이웃집 아저씨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하 이러다간 우리나라의 사다리가 전부 이렇게 바뀌겠구나. 어쩌면 세계적 명물이 될지도 모르겠는 걸⋯”
아빠는 커다랗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어디에선가 시원한 솔바람이 불어와 나의 가슴을 휘감고 돌아갔다.
=글 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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