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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고 펴는 모자 챙
작은 코에 쌍꺼풀 없는 눈, 거기다 콧잔등엔 까만 주근깨.
나는 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동그란 흰 얼굴에 작은 코는 그런대로 귀엽게 보이는데, 코에서부터 시작되어 양쪽 뺨에 퍼진 주근깨는 영 예쁘지 않다.
“뭘 그렇게 보니?”
내 끈질긴 시선이 귀찮았는지 언니는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으응⋯ 언니 얼굴.”
“내 얼굴은 봐서 뭘 해? 네 얼굴이나 보렴.”
“언니는 흰 얼굴이 정말 귀여운 것 같아. 약간 작은 코도 밉지 않아. 그런데⋯”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언니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귀엽다고? 듣기 싫진 않네⋯ 하지만 말끝에 붙인 그런데는 영 맘에 걸린다. 그런데 다음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난 언니의 눈을 한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다 좋은데 말야. 주근깨가 망쳤어. 흰 얼굴에 주근깨라니⋯ 멀리서도 다 보일 지경이야.”
나는 말을 하다말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엷은 미소를 띠던 언니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어⋯ 언니 왜 그래? 기분 나뻐?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 아닌데⋯”
나는 무척 당황해서 마구 변명을 했지만 언니의 얼굴은 쉽게 펴지질 않았다. 오히려 눈엔 눈물마저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 난 주근깨가 많다. 넌 나중에 안 생길 것 같니? 학교에서 남자애들한테 놀림당하는 것도 속상한데, 너까지 나를⋯”
언니는 마침내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뛰쳐나갔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왜 그렇게 힘이 없니? 언니랑 또 싸웠니? 네 언니는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던데⋯”
걱정스럽게 물으시는 엄마의 물음에 난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는 언니, 그 말만이 되풀이해서 귓가에서 윙윙 울렸다.
“정말 이상하구나. 도대체 두 자매가 똑같이. 얼른 말해봐.”
엄마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자꾸 물으셔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 놓았다.
“어떻게 하지요? 언니가 그렇게 슬퍼할 줄은 몰랐어요. 전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진심어린 사과를 해보렴. 언니도 분명 풀어질 거야.”
엄마는 부드럽게 웃으시며 내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자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사과를 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 생각을 하노라니 문득 얼마 전에 언니가 엄마께 모자를 사달라고 조르던 일이 떠올랐다.
‘맞아! 언니가 챙이 넓은 모자를 가지고 싶다고 했지? 햇볕을 자꾸 쐬면 주근깨가 늘어난다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벌써부터 언니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예에? 만 오 천 원이요? 모자 하나가 그렇게 비싸요? 그것보다 좀 싼 것은 없나요?”
모자 가게 아저씨는 귀찮은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이걸 어쩌지’
정말 난감한 노릇이었다. 돼지 저금통을 털어서 내가 마련한 돈은 총 칠 천원. 새 모자를 사기에는 턱도 없는 돈이었다.
‘어떻게 하지? 꼭 챙이 넓은 모자를 사주고 싶은데⋯’
나는 길바닥에 멍하니 서서 생각에 빠져 들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면, 내가 모자를 만들어 줄까? 지금 가지고 있는 모자에 두꺼운 종이로 챙을 달아서⋯’
나는 새로운 넓은 챙을 단 모자를 떠올려 보았다.
‘아니야. 안 돼겠다. 웃기겠어. 오히려 멀쩡한 모자마저 쓰지 못할지도 몰라.’
온몸에서 힘이 쭈욱 빠졌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흥겨운 노래 가락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지만 틀림없는 노래 소리였다.
“시원시원 부채가 단돈 오백원. 접었다 폈다 부채가 단돈 오 백원.”
자세히 들어보니 부채 장수 아저씨가 손님을 끌기 위해 부르는 재미난 노래였다.
‘접었다 폈다 부채? 정말 재밌는 아저씨네⋯’
나는 아저씨의 노래를 천천히 되뇌어 보았다. 접었다 펴는 부채라는 가사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맞았어! 접었다 펴는 부채. 그것처럼 모자의 챙도 맘대로 접게 만들어야겠다.”
나는 신이 나서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언니의 헌 모자에 새로운 넓은 챙을 다는 거야. 물론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어야지. 부채처럼⋯ 그러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선 쫙 펴서 넓은 모자로 쓰고⋯ 보통 때엔 접어서 좁은 챙의 모자로 쓰고⋯ 정말 좋은 생각이야!’
생각할수록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따가운 햇볕도 오늘따라 기분 좋게 느껴졌다.
‘얼른 가서 언니에게 멋진 선물을 해야지!’
나는 신나게 뛰었다.
주근깨마저 방긋 웃는 언니의 환한 얼굴이 나의 옆에서 함께 뛰는 것 같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겸임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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