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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을 이용한 방습제
올해의 장마는 유난히 일찍 왔다고 불평들이다. 하긴, 나도 일주일씩이나 찌푸린 날이 계속되어서 짜증스럽다.
여름답게 햇볕이 쨍쨍 내리 쬐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보지만, 장마 비는 계속 여보란 듯이 줄기차게 내린다.
“정말, 비도 어지간히 온다.”
창숙이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푸념을 했다.
“비가 오니까 좋지 않냐? 저쪽 지붕 좀 봐라. 얼마나 깨끗한가.”
준수가 창숙이 쪽으로 다가가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봐. 욱이야. 내말이 맞나 좀 봐라.”
준수가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은 파란, 빨간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래. 전보다 훨씬 깨끗하긴 하다. 아마 이 비가 그치면 모든 거리가 한결 깨끗해져 있을 거야.”
준수의 말에 나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창숙이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너네들 앞에서 말을 꺼낸 내가 잘못이다. 사실 장마의 불편이 한두가지이냐? 빨래도 안 마르고 교통사고도 많이 나고⋯”
창숙이는 나와 준수를 번갈아 바라보며 훈계하듯 말했다. 사실 창숙이의 말은 모두 옳았다. 요 며칠 새 엄마는 빨래 말리기에 전전긍긍하시고 있었다. 게다가 나도 습기가 가득 베인 이불과 요 때문에 못마땅해 하고 있던 터였다.
“어이구! 여자란⋯ 왜그렇게 감정이 메말라 있냐? 비가 내리는 거리. 너무 멋있지 않아?”
준수는 눈을 한껏 내리 깔고 창숙이를 경멸하듯 쳐다봤다. 그리하여 결국 두사람 사이에는 말다툼이 일기 시작했다.
“장마 비! 얼마나 멋지냐?”
“참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두 사람의 언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도저히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둘 사이에 끼어서 정말 곤란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그 다툼은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신 후에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은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한참동안 서로를 흘겨보고, 혀를 내밀면서 약올렸다.
‘참내, 별일도 아닌 일 가지고 왜 저렇게 난리들이람?’
나는 둘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마 비의 장단점이라⋯’
둘의 논쟁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창숙이의 말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사실 장마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내가 여러 가지 생각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수업은 꽤많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또 부러졌네! 안 되겠다. 주번은 교무실에 가서 새 분필을 가져와라.”
분필 가루가 묻은 손을 터시며 선생님께서 주번을 가리키셨다. 주번이 교실을 빠져 나가자 선생님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오랜 비 때문에 모두 불편하지요? 선생님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요. 분필도 습기를 먹어서 자꾸 부러지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기분을 상쾌하게 가지도록 노력해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심부름을 갔던 주번이 돌아오고,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업에 신경을 쏟을 수 없었다.
‘분필이 습기를 흡수 했다고? 그렇다면 혹시 분필에게 뛰어난 흡습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백묵을 노려보았다.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못 쓰게 된 분필조각을 재활용 할 방법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 어쩌면 창숙이의 불만을 해소시킬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방과 후에 칠판의 백묵 서랍을 뒤져 백묵조각과 가루를 모았다.
‘우선 분필이 어느 정도의 흡습성을 가지는지 알아야해.’
나는 메스실린더에 정확히 35ml의 물을 넣고 그 안에 분필 한 개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또다른 메스실린더에는 분필을 넣지 않고 그냥 물만 넣었다.
이 두개를 서로 비교관찰하여 분필의 흡습량을 알아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딱 하루 만에 아주 뚜렷하게 나타났다.
분필을 넣어둔 메스실린더에서는 물이 5ml나 줄어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다른 실린더의 물은 거의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높은 효과를 갖는구나!”
천덕꾸러기로만 여겨지던 조각분필들이 새로운 역할을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분필의 효과가 밝혀졌으니,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즉시 분필을 이용한 방습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분필들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흰 천으로 싸서 방울처럼 묶어 두었다. 그러자 보기에도 좋은 멋진 방습제가 탄생했다.
“좋아! 아주 멋지군⋯”
나는 두 상자에 이 방습제를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거기에 각각 창숙과 준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넣었다.
‘창숙아, 준수야. 우리 이 여름을 백묵가루처럼 뽀송뽀송하게 지내자⋯’
어렴풋이 준수와 창숙이의 수줍은 미소가 보이는 듯 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겸임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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