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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져 편리한 칫솔
“아얏! 아유 아파라⋯”
잇몸에 심한 통증을 느껴, 나는 그만 칫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니, 피까지 나네!”
나는 입술을 벌려 잇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입안 구석, 깊숙한 곳에서 붉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칫솔머리에 부딪혀 잇몸이 찢긴 것이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칫솔을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런 불량 칫솔을 돈 받고 파는 거지!”
나는 칫솔을 마구 밟으며 분풀이를 해댔다.
“도대체 무슨 일이니? 목욕탕에서 굿이라도 벌인 거니?”
빠끔히 열린 문틈 사이로 누나가 얼굴을 들이 밀었다.
“잇몸이 또 찢겼어!”
나는 그때까지도 분이 덜 풀려 씩씩거리고 있었다.
“옳아, 칫솔에 쓸린 거구나? 참아야지 별 수 있니? 남들도 다 겪는 일인데⋯ 애꿎은 칫솔에게 화풀이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누나는 나를 ‘괜한 일에 화내는 이상한 아이’로 치부했다. 나는 누나의 사고방식에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고쳐야지! 그걸 그냥 참구 있어? 미련한 짓이야!”
나는 혀를 쯧쯧 차며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미련한 짓이라니?”
누나는 나의 말에 발끈 화를 내며 따져 물었다. 누나의 과 반응에 나는 아차 싶었지만 왠지 그 말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잘났냐? 그렇다면 이왕 내친김에 해결책도 마련해보지 그러냐? 그러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는 쾅쾅 쳐?”
“큰소리인지 아닌지는 일이 끝나봐야 아는 것 아냐? 두고 보라고! 곧 멋진 작품을 만들 테니!”
나도 뒤질세라 배짱을 부리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자 누나는 눈을 한껏 흘기며 돌아서 가버렸다.
‘어쨌든 1라운드는 나의 승리로군!’
나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았다. 그러나 그 승리감도 잠시뿐, 이내 후회의 물결이 밀려왔다.
‘어쩐다. 큰 소리는 쳐놨는데⋯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누나에게 사과하고, 항복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좋다. 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어차피 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니까.’
나는 그날부터 틈이 나는 대로 칫솔연구에 몰두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칫솔의 머리부분이 너무 딱딱해서 잇몸에 상처를 주는 거로구나⋯ 그러면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완충제를 사용하면 되겠다.’
나는 일단 생각의 기본 틀을 잡고는 구체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우선 완충 재료로 스폰지, 비닐, 나무, 고무 등을 선정해 보았다.
‘아, 스폰지는 물의 흡수력이 강해서 안 되겠다. 세균도 많이 번식할 것 같고...’
‘나무나 비닐도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아⋯’
실험결과, 나는 고무를 선택했다. 물론 젖꼭지의 재료와 같은 무독성 고무를 사용했다.
‘흐음, 아주 좋은데... 잇몸에 닿는 느낌도 부드럽고...’
나는 흡족한 마음에 기분 좋게 오랫동안 이를 닦았다. 그러는 중 새로운 불편을 깨닫게 되었다.
‘칫솔의 모양의 직선으로 쭉 뻗어있어 입안 구석의 곡선부분은 잘 닦이지 않는 구나...’
간단하게 칫솔질을 할 때는 잘 깨닫지 못했던 불편이었는데, 세심하게 이를 닦다보니 확연히 느껴졌다.
‘칫솔의 목 부분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지게끔 만들면 어떨까?’
꽤 오랫동안 칫솔에 연구한 터라 나는 문제점과 해결점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칫솔의 머리부분처럼 목 부분도 고무로 연결하는 거야! 그러면 치아의 모양에 따라 칫솔머리의 각도가 자유자재로 변하겠지?’
나의 예상대로 새로 개발된 칫솔은 잇몸에 무리가 덜 갈 뿐 아니라, 구석구석까지 쉽게 닦아주어 힘도 덜 들었다.
“어때! 내 장담대로 결국 해냈지?”
나는 자랑스럽게 칫솔을 내놓았다.
누나는 씁쓰레 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갑자기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에 와 박혔다.
‘나도 사실 잘 한 것은 없지⋯ 누나를 무시하는 말만 하고⋯’
나의 모든 행동들이 후회 되었다. 어떻게든 누나에게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요동을 쳤다.
“좋지, 누나에게 심한 말을 했던 것이 미안해서 이를 악물고 만들었다고! 누나에게 사과의 선물로 바치려고 말이야.”
순간 누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렇지! 내 동생이 누군데⋯ 그런 줄도 모르고 누나는 일주일동안 내내 섭섭해 했잖아!”
누나의 밝은 소리를 들으니 그제 서야 내 맘도 편해졌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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