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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금이 있는 호스
봄이 되자 은선이네 집 안마당에는 이제 새싹을 내기 시작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은선이는 엄마와 함께 화분을 재배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래서 은선이는 토요일 오후에는 엄마를 따라 화훼시장에 나가 묘목을 사오기도 하고, 난이나 분재 등의 화분을 구해오기도 한다.
할아버지 산소는 서해안의 바닷가 옆에 있는데, 갈 때마다 춘란, 소사 등의 묘목을 캐다가 화분에 심어둔 것이 꽤 되었다.
“와, 봄이 되니까 모든 식물이 잠에서 깨어나 손을 내미는구나, 정말 상쾌한 날씨야!”
“엄마, 그렇게 좋으세요?”
“응, 은선이 너는 좋지 않니?”
“아니요, 저도 기분 좋아요.”
“그럼, 우리 다음 주말에는 할아버지 댁으로 나물 캐러 갈까?”
“나물이라고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쑥, 냉이, 달래, 씀바퀴도 캐고, 뒷산에 가서 난이나 진달래 있으면 찾아오자.”
“정말 할머니대게 가시게요?”
“그래, 세 시간이면 가는데 뭐! 기차 타고 가면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이번에는 고속버스로 가요, 휴게소에서 파는 와플, 미니 도너스 맛이 끝내주거든요.”
“좋아, 그럼 다음 주말에 가자. 아빠께 말씀드리자. 랄랄라”
소녀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은선이는 소리 없이 킥킥거렸다.
‘우리 엄마는 어느 땐 정말 소녀 같아 소풍가는 기분이신가 봐!’
드디어 주말이 되었다.
“아빠, 아빠도 가실 거예요?”
등산화에 모자까지 쓰신 아버니를 보고 은선이가 놀라서 묻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예쁜 공주님들만 보낼 수야 없지. 그러다가 누가 채가면 어떻해. 그래서 내가 아예 자가용으로 모시기로 했다. 오늘 나는 운전수다. 자, 준비되었으면 다들 타시지요.”
“호호호, 은선아, 더 신나게 됐다. 어서 타라.”
“알았어요. 헷헤헤”
봄볕이 따사로운 고속도로글 자동차는 정말 근사하게 달렸다.
은선이와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 사철에 봄 바람 불어 일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
휴게소에서 내려 맛있는 것도 사먹고, 산과 들판을 지나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는 산위에 걸친 해가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몸을 추스리는 석양이었다.
“야, 다 왔다! 할머니이,”
집 앞 텃밭에서 무언가를 하고 계시던 은선이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반기셨다.
“아니,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어머니, 이 사람이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오냐, 잘 왔다.”
은선이 어머니가 준비해간 고기와 생선으로 맛있는 저녁을 지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할머니 댁은 온통 이야기꽃으로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튿날, 어머니의 말씀대로 은선이는 나물도 캐고, 진달래, 난 등의 묘목을 뒷산에 가서 구해가지고 다시 또 집으로 돌아왔다.
“은선아, 이건 네 화분이니까 네가 잘 가꾸고 키워라, 알았지?”
어머니는 은선이에게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직접 관찰해 보라며 여러 개의 화분에 씨앗도 심고, 꽃나무도 심어 별도로 내주셨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와, 신난다. 엄마 새싹이 돋았어요.”
씨앗을 매단 새싹이 샛노랗게 올라오는 것에서 생명의 신비를 깨닫게 된 은선이는 그날부터 틈만 나면 화분 옆으로 달려갔다.
“벌써, 많이 자랐어요.”
아침 저녁으로 물도 주고, 늘 사랑해준 탓인지 화분의 꽃나무들은 키가 많이 자랐다.
그래서 얼마나 자랐는지 보려고 은선이는 줄자를 들고 화분옆으로 갔다.
그런데 줄자는 힘이 없어, 재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이, 힘들어! 더 편리하게 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속으로 생각하며 은선이는 식물들이 자라는 과정을 좀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꽃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은선이를 놀라게 했다.
“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자라네요. 그런데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으니”
화분 안으로 풀이 나면 뽑아주고, 영양제를 주자, 물조리로 주는 시원한 물을 먹으며 꽃나무는 꽃망울을 터드리기 시작 했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수돗가로 간 은선이는 손을 씻으려다, 가늘고 긴 호스를 발견했다.
어머니께서 상치, 고추, 토마토 등에 물을 주는 호수였다.
‘맞아, 이거면 되겠어.’
은선이는 곧 줄자를 준비하여, 호스에 대고 선을 그어 센치미터를 표시했다.
호스 자가 된 셈이다.
‘이 호스 자를 자라는 식물에 연결하거나, 식물원에 달아 놓는다면 관찰하기가 훨씬 더 편하겠어. 얏호!’
“은선아, 뭐가 그리 좋은 거야?”
“엄마, 이걸 보세요.”
“와,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다. 우리 딸 은선이 최고다. 은선이가 발명했다. 호호호”
어머니는 은선이 보다도 훨씬 더 기뻐해 주셨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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