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스통 밑의 저울
눈이 번쩍 뜨였다. 오늘은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시는 날. 늦잠을 잘 여유가 없다. 꾸물거리다가는 우리 형제 모두가 지각을 할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얼른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가 늘 하시듯 아침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였다.
“은혜야 미안하다. 네가 아침을 좀 챙겨야겠다. 엄마가 급해서... 학교에 늦지 않도록... 미안하다.”
저녁 늦게 걸려온 전화에서 엄마의 목소리는 꽤나 다급하게 들렸다. 그리고 무척이나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할 수 있겠니?”
“물론이죠! 엄마 제가 어린애인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은 약간 불안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대신에 내가 어른 행세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엄마의 앞치마를 두르니 정말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오빠나 승규도 모두 내가 보살펴줘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대장인 것이다.
나는 휘파람을 나주기 불곤, 싱크대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얼마 전에 엄마와 함께 저녁을 지어 보았기 때문에 밥을 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빠는 내 음식 솜씨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 할 것이다. 물론 승규도 누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는 계란말이가 내 작품이란 것을 알면 친구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누나? 뭘 혼자서 그렇게 웃어?”
언제 일어났는지 찬규가 눈을 부비며 서 있었다. 엄마가 안계시니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이 누나가 맛있는 밥을 해줄게!”
나는 엄마처럼 찬규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누나가?”
“그래.”
찬규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밥은 어딨어? 아직 안했어?”
“하는 중이잖아.”
“가스불도 안 켜고?”
“가스 불을 안 켜고 어떻게 밥을 하니? 괜히 참견하지 말고 가서 세수나 해.”
나는 찬규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찬규는 밀리지 않으려고 두발로 버티며 계속 중얼거렸다.
“누나는 장님이야? 잘 보라고!”
“참내! 얘가 잠꼬대를 하...”
나는 찬규의 머리를 쥐어 박다말고, 그 자리에 뻣뻣이 굳고 말았다. 찬규의 말마따나 가스렌지는 꺼져있었다. 분명 가스 벨브도 열려있고, 스위치도 켜져 있는데 불꽃이 없는 것이다.
“가... 가스가 떨어졌나봐...”
나는 몇 번씩 가스렌지의 손잡이를 돌려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탁탁 소리만 낼뿐 불꽃은 피어오르지 않았다.
“어쩌냐?”
맛있는 계란말이는 고사하고, 밥마저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하필 이 순간에 가스가 떨어지냐?”
나는 LPG 가스통을 처량하게 쳐다보았다. 찬밥도 없으니 아침부터 점심까지 꼬박 굶게 될 것이 뻔했다.
“에이! 누나는 가스 떨어진 것도 모르냐?”
찬규는 퉁퉁 부어터진 얼굴로 투덜거렸다.
“가스통이 유리병도 아니고, 어떻게 안을 들여다보겠니? 엄마가 계셨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오빠가 애써 내편을 들어주었지만, 나는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가스통이 원망스러웠다.
“기름 탱크처럼 남아있는 양을 확인할 장치가 붙어있으면 얼마나 좋아! 어째 가스통엔 그런 것도 없데? 너무 미련스럽잖아. 그저 가스가 떨어지길 무작정 기다리란 말이야?”
한껏 푸념을 늘어놓았다. 엄마의 칭찬도, 친구들의 감탄어린 표정도 모두 가스통 때문에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뭐⋯ 가스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인할 방법이 없잖니?”
오빠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오늘 하루 다이어트 한다고 생각하자. 한 2kg은 빠지지 않을까?”
“다이어트?”
“그래. 너 요즘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고 걱정했었잖아...”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스와 다이어트⋯ 아주 재미있는 관계가 생길 것 같았다.
“오빠, 가스도 무게가 있을까? 이를테면 가스통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겠냐 말이야?”
오빠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론⋯ LPG의 경우엔 공기보다 무거우니까”
“그럼 가스통에서 가스가 빠지면 아주 약간이라도 가벼워지겠네?”
“물론이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가스통의 심술을 격퇴할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른 때문이다.
“좋았어! 가스의 사용량을 확인할 방법을 알아냈어.”
“어떻게?”
오빠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간단해. 가스통 밑에 저울을 설치하면 되는 거야. 무게를 점검하면 될 것 아니야?”
“오호라. 정말 그렇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나.”
오빠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을 굶게 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구나. 아무 일도 없었다면 이런 발명은 없었을 것 아니야?”
“하긴... 위대한 발명은 고통과 불편 속에서 생긴다며? 우리 형제의 굶주림 덕분에 내가 발명가가 되는 셈이네?”
나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쥐고 씁쓸히 웃었다.
“발명도 좋지만, 난 밥이 더 좋아.”
찬규의 한마디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도 지금은 밥이 더 좋다.”
눈앞으로 윤기가 좔좔 흐르는 밥과 노릇노릇한 계란말이가 날아다녔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