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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지 못하는 연필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어요. 좋은 버릇은 괜찮지만, 나쁜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면 어떨까요?”
“보기 싫어요!”
“맞아요. 나쁜 버릇은 얼른 고치는 것이 좋아요. 여러분 모두 공책 앞장에 자신의 나쁜 버릇을 커다랗게 써두고 매일 보면서 고치도록 하세요.”
“넷!”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공책에다 자신의 버릇을 써넣기 시작했다.
“넌 뭐라고 쓸거니?”
“글쎄... 연필 물어뜯기라고 쓸 생각인데...”
보경이는 말끝을 흐리더니 연필 한 자루를 나에게 주었다.
“이것 봐. 이게 내 버릇이야. 초조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는 꼭 연필을 질겅질겅 씹어. 때문에 모든 연필이 그 모양이야.”
보경이가 건네준 연필은 끝이 무참히 일그러져 있었다. 끝이 몽땅 깨어져 나갔을 뿐 아니라, 선명한 이빨 자욱이 군데군데 흉하게 박혀 있었다. 꼭 말썽꾸러기 강아지가 한 짓 같았다.
“이렇게 연필을 씹는 것은 몸에도 안 좋을 텐데... 연필심에 독이 많잖아.”
“그래, 그래서 고치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안돼.”
보경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난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을 때도 나무젓가락을 씹어. 정말 심하지?”
보경이의 볼이 빨갛게 물이 들었다.
마음도 곱고 얼굴도 예쁜 보경이에게 이런 괴팍한 버릇이 있었다니, 나는 속으로 많이 놀랐다.
“도시락 같이 먹자. 오늘 전학 오는 바람에, 도시락 싸오는 것을 몰랐구나?”
파란 완두콩이 촘촘히 박힌 도시락을 내밀며 보경이는 하얗게 웃었다.
“이 계란말이 내가 만든 거야. 엄마가 며칠째 아프셔서, 내가 밥을 해야 해. 어때 맛있겠지?”
낯선 풍경, 낯선 아이들 틈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나에게 보경이는 너무나 친절했다. 처음 전학 오던 날의 도시락부터 시작해서, 노트 필기와 체육복의 준비까지. 보경이는 나에게 세세하고 따뜻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낯선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간 나중에 애인 앞에서 나무젓가락을 질겅질겅 씹을지도 몰라. 선생님 말씀대로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면 말이야.”
보경이는 장난스레 말하다가 이내 한숨을 포옥 쉬었다. 자신의 나쁜 버릇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줄까?’
나는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꿀꺽 삼켰다. 보경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내가 진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괜스레 잔소리만 늘어놓게 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나쁜 버릇을 고칠 방법은 없을까?’
나는 보경이의 연필을 슬금슬금 훔쳐보며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연필을 씹을 때마다 머리를 한대씩 때려줄까? 아니야. 머리를 맞으면 기분이 나빠질 거야.’
갖은 방법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특별히 쓸만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옆에서 걱정이나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보경이의 필통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는 유독 연필을 많이 씹는구나. 볼펜이나 다른 것은 거의 멀쩡한데?”
“글쎄? 연필이 부드럽기 때문 아닐까? 볼펜은 딱딱하고⋯ 그 때문에 무의식중에서도 연필을 씹는 것인가 봐.”
“그래...”
뭔가 중대한 것을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연필이 딱딱한 경우에는 씹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구나!’
머리속이 환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이제 조금만 생각을 하면 해답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 맞았어. 연필 끝에 딱딱한 덮개를 씌운다면 문제는 해결 될 거야.’
드디어 문제의 끝에 다 달아 해답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것 마냥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지난번 산수시험에서 백점을 맞았을 때도 이렇게 기쁘진 않았었다.
“자, 이것 선물이야. 너에게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걸 실천하게 됐어.”
나는 작은 함석 고깔들을 보경이 앞에 쑤욱 내밀었다.
“이게 뭐야?”
“네 연필 뒤에 씌워. 흉한 자국도 가려주고, 네 버릇도 고쳐줄 거야.”
“고⋯고마워⋯”
보경이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고맙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 했다.
창밖의 햇살도 내 좋은 기분처럼 오늘따라 더욱 밝게 다가왔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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