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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 수건
‘우 와 앗!’
나는 차마 입 밖으로 소리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꾹 삼켰다.
‘이를 어째!’
나는 욕탕에서 나오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 해 했다. 만족스런 미소를 띠우며 얼굴을 닦고 계시는 아빠의 손에 들린 수건. 그것은 내가 좀 전에 발을 닦았던 바로 그 수건이었다.
‘어떡해. 이제 와서 말씀드릴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아빠에게서 수건을 빼앗아 버리고 싶었지만, 잠자코 앉아서 아빠가 그 수건으로 목이며 팔들을 닦는 광경을 애타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제서 진실을 밝힌다면, 오히려 더 안 좋을 것 같았다.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으니...
‘어휴, 이 칠칠이. 발을 닦은 다음엔 세탁 바구니에 바로 넣었어야 했는데⋯’
나는 스스로를 아프게 쥐어박으며 나무랬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집에서 흔한 일이었다. 원흉은 전부 나 때문이고⋯ 내가 발을 닦은 뒤 아무렇게나 두는 바람에 오빠나 엄마, 아빠까지 그 발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것이다. 엄마나 오빠 본인은 모르겠지만 내 발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것이 아마도 열 번은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몇 번씩 되풀이 하여 다짐 했지만 나의 칠칠함은 변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사실을 오빠가 안다면 난리가 나겠지. 가뜩이나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던데...’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오빠를 보며 나는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야! 네 발에서 나온 독 때문에 내 여드름이 심해졌어! 어쩔 거야!’
금방이라도 오빠가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안 되겠어.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이대로는 내 양심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수건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어쩔까? 수건에다 내 이름이라도 크게 써 놓을까? 하지만 내 수건이라고 해서 오빠나 엄마가 안 쓸 리도 없는데...’
한참을 끙끙거리며 고민하였지만 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게다가 내가 조금만 조심하면 될 일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조차 했다.
‘그래. 좀더 주의해서 생활하지 뭐.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 닦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좀 전의 굳은 맹세를 금새 까먹고는 또 내 좋을 대로 편하게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숙제도 산더미 같이 쌓여서 더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휴우, 이제 다 했군. 남은 것은 다른 나라 국기 그리기뿐이구나.”
나는 커다란 백과사전을 펴놓고 외국의 국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그리기 편하고 쉬운 것으로 골라 그릴 생각이었다.
‘흐음 일본이 제일 쉽구나. 일본하고 프랑스도⋯’
나는 국기를 찾다 말고 프랑스의 삼색 국기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 파랑 빨강 하양의 단순한 색깔 앞에서 어떤 중요한 것이 떠오르려 했다.
‘바로 이거야! 삼색의 수건을 만드는 거야. 파랑색은 얼굴을 닦도록 하고 하양은 손, 빨강은 발을 닦는 거지! 그러면 아주 위생적이잖아!’
나는 그림 숙제를 하기 위해 늘어놓았던 도구들을 몽땅 치워 버리고, 대신 바느질 바구니를 찾아 내왔다. 그리고 서랍을 몽땅 뒤져 파랑, 분홍, 하얀색의 수건을 각각 찾아내었다.
‘좋았어! 이것들을 동그랗게 연결해서 멋진 수건을 만들어 봐야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솜씨가 서툴러서 바늘에 손끝이 찔리기도 하고 바느질 모양이 삐뚤삐뚤 해졌지만 꿋꿋하게 계속 해나갔다.
분홍색 수건의 끝에 하얀색 수건을 잇고, 그 끝에 다시 파란색 수건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홍색과 파란색 수건을 이어, 거대한 수건 고리가 완성되었다.
나는 상처로 얼룩진 손과 마침내 완성된 수건을 번갈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 멋지지?”
“그래! 매일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재주를 부릴 줄도 아네?”
나의 위생 삼색 수건을 보자, 모두들 신기해했다. 특히 오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했다.
“좋은 생각을 했구나. 안 그래도 수건을 쓸 때마다 어쩐지 찜찜했었는데...”
엄마의 말씀에 나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내 가슴을 무너뜨린 것은 뒤이어 나온 오빠의 말이었다.
“헤헤, 죄송해요. 제가 발 닦은 수건을 아무데나 두는 바람에...”
“으악! 그렇다면 오빠의 고랑 내 나는 발 닦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나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펴졌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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