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 모자
“어떻게 하지? 형.”
“나도 몰라...”
우리 형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덜터덜 걸었다. 발밑에서 먼지가 피어올라 목으로 코로 연기처럼 스며들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단 한 가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형이 아빠한테 이야기해.”
“안돼. 난 일주일전에 뻐꾸기시계를 망가뜨렸단 말이야. 이번엔 진짜 혼날 거야.”
나는 더욱 더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렸다.
“네가 이야기해. 넌 이번엔 사고 저지른 일이 없잖아.”
“형이 몰라서 그래. 식기 세척기 만든다고 실험하다가 접시를 열장이나 깨뜨렸어. 그것도 어제 저녁에⋯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다고...”
우리 형제의 어깨는 더욱 쳐져 버렸다. 스프링이 목에 감겨 시계 속에서 엉켜 버린 나무 뻐꾸기나, 식기 세척기(물론 내가 발명한 엉터리 기계) 속에서 가루가 되어 나온 접시 열장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냐? 라디오가 이 지경으로 박살이 났으니...”
“형은 라디오 고칠 줄 알잖아. 저번에도 고쳐봤잖아.”
“소리야 나게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렇게 엉망으로 깨져버린 몸체는 어떻게 고치냐?”
나는 깊은 절망으로 눈을 찔끔 감았다. 두 형제가 일주일 동안 대형사고를 두건이나 쳤으니, 이제 용서받을 길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일주일 근신이나, 바캉스 취소의 무시무시한 형벌이 내려지게 될 것 같았다.
“그러 길래 내가 조심하랬잖아. 왜 라디오를 들고 공을 잡으려고 했나 말이야?”
“순간적이었지. 형은 홈런공이 내 쪽으로 날아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리고 애당초 야구장에 라디오를 가져가자고 한 사람은 형이었잖아.”
나는 라디오를 떨어뜨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가 응원하던 팀이 역전 홈런을 날리던 그 순간, 나는 형과 나를 한꺼번에 아웃시키는 병살타를 날린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냐? 내일 모레엔 아빠도 야구장에 가신다고 했는데...”
“그럼, 라디오를 찾으시겠네?”
“당연하지! 망원경, 도시락, 모자, 선 그라스, 라디오. 아빠가 그중에 하나라도 빠뜨리시는 것 봤냐?”
“으윽!”
가슴으로부터 비통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야! 이대로 혼이 나기만 기다릴 순 없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이디어를 좀 짜봐. 지난 여름에도 무사히 넘어갔잖아.”
“지난 여름?”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쇠공이랑 나무공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난 믿어지지 않아.”
“그래? 그럼 직접 실험을 해보면 되잖아.”
우리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했던 실험을 흉내 내어 똑같은 크기를 가진 두 공을 창문에서 떨어뜨렸다. 물론 하나는 아주 무거운 쇠공이었다.
‘와장창!’
나는 그때의 그 요란하던 소리를 떠올리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맞아! 그때 그 쇠공이 아빠의 차에 떨어지는 바람에 앞 유리가 박살났었지?”
“그래. 그런데도 우린 별로 혼나지 않았어. 바로 낙하실험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그냥 간단히 꾸중을 듣고 이틀 동안 얌전히 지냈을 뿐이야.”
그 말을 듣자 나에게 다시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모면할 방법이 어딘가 꼭 있을 것 같았다.
“잠깐만! 아까 형이 그랬지? 망가진 라디오를 소리는 나게 만들 수 있다고?”
“으응...”
형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라디오의 내부를 어디 다른 곳에다 붙일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새로운 작품을 만들자는 이야기지.”
“아하! 부서진 몸체를 대신할 것을 찾잔 말이구나.”
형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형의 눈도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을까?”
“글쎄... 아빠가 야구장에 갈 때 가져가시는 것과 연관시키면 좋은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각자 생각에 잠기었다.
‘라디오를 듣는 것은 귀... 귀와 가장 가까운 것은? 맞아! 바로 모자야!’
한참 궁리 끝에 나는 멋진 결론을 내리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형! 형! 모자야. 모자에다 라디오를 장치하면 돼! 그러면, 라디오를 손에 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떨어뜨릴 염려도 없어!”
“맞았어!”
형도 얼른 내말을 이해하고선 탄성을 터뜨렸다.
“이젠 됐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오히려 칭찬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형은 흥분하여 소리를 높여 말했다. 물론 나도 형과 함께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어제 저녁에 실패한 식기세척기 같은 것은, 이제 깨끗이 잊을 수 있게 되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