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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치가루로 배추벌레 살충
상치 밭 한가운데에서 작은 머리통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우리 집 막내 현도였다.
“이 녀석아. 점심도 안 먹고 여기서 뭘 해? 엄마가 아까부터 찾으셨어.”
나는 밭 가장자리에 선 채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꼬맹이를 찾느라 여직 점심도 못 먹은 걸 생각하니 약이 바짝바짝 올랐다.
“얼른 안 나와?”
내 화를 돋구려는 심산인지, 현도는 꿈쩍도 안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직접 밭 가운데로 들어가 현도를 끌고 나와야 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벌레를 찾았어.”
현도는 밭에서 끌려나온 것이 못내 아쉬운지 계속 입을 내밀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벌레? 무슨 벌레? 상치에 벌레가 있니?”
나는 깜짝 놀랐다. 상치에 벌레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 상치인데.
“아니 없었어.”
“그럼, 그렇지. 상치에 벌레가 어디 있니?”
“배추에는 벌레가 많잖아. 귀엽게 생겼던데.”
“배추하고 상치하고 같니? 배추는 배추니까 배추벌레가 있는 것이고, 상치는 상치니까 배추벌레가 없는 거지... 그리고 벌레가 뭐가 예쁘니? 징그럽기만 하지. 하여간 엉뚱한 짓만 한다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그런 시시한 것을 생각하느라 밥을 굶다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 상치에는 왜 벌레가 없어?”
현도의 질문은 집에 와서도 계속 되었다.
“글쎄? 벌레들이 상치를 싫어 하나보지.”
“왜 싫어하는데?”
“상치가 맛이 없나 보지.”
“그럼 배추는 맛있어?”
“맛있으니까 현도가 배추김치를 먹지. 안 그래?”
“으응. 난 김치 좋아해.”
현도는 배시시 웃으며 커다란 김치를 한입에 넣었다. 엄마가 해준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나에게 궁금증이 생기고 말았다. 현도와 엄마의 대화를 듣는 도중, 정말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말 상치가 맛이 없기 때문에, 벌레가 싫어하는 것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쩐지 상치에는 큰 비밀이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접 해답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상치와 배추벌레를 가지고 실험에 들어갔다.
실험을 시작한지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나는 아주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상치는 배추벌레를 죽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상치에는 어떤 독성물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물질 때문에 배추벌레를 비롯한 벌레들이 상치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치의 특성을 이용하면, 골치 덩어리인 배추벌레를 없앨 농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사람에게는 전혀 나쁘지 않은 무공해 농약을...
그래서 나는 상치가 어떤 상태일 때 가장 효과가 뛰어난지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기로 했다.
상치를 물에 넣어 삶기도 하고, 찧어서 즙을 내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햇볕에서 잘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준비한 재료들에 배추벌레를 한 마리씩 넣고 얼마 만에 죽는 가 시간을 재어봤다. 그 결과 상추를 삶은 물에서는 130분에서 150분 사이에서 벌레가 죽었고, 상치를 빻아 만든 즙에서는 19분 정도가 걸리자 거의 죽었다. 그리고 상치 가루에 넣은 벌레는 16분이 되자 모두 죽었다.
즉 상치를 가루로 만들었을 때, 가장 효과가 뛰어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 봐. 현도야. 상치에 벌레가 없는 것은 상치가 독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실험결과를 현도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었다. 현도가 엉뚱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실험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도는 접시 위에서 꿈틀꿈틀 죽어가는 초록색 벌레를 잠자코 보기만 했다. 나의 실험결과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 상치 가루를 배추 밭에 농약대신 뿌릴 거야. 그러면 사람이나 동물에겐 전혀 해가 없고 징그러운 벌레들만 죽겠지?
정말 무공해 농약이 되는 거야.”
내가 의기양양하게 자랑하자, 현도는 괜스레 입을 실룩였다.
“난 벌레 죽이는 것 싫어. 귀엽잖아.”
기가 막혔다. 벌레가 귀엽다니...
“벌레들은 네가 좋아하는 배추들을 몽땅 갉아 먹잖아. 그래도 좋아?”
“으음...”
좋아하는 배추와 귀여운 벌레. 현도는 한참을 그 가운데에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안 되겠어. 벌레는 죽여야지... 상치가루로 모두 없애야겠어.”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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