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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커피 잔
‘이모가 다쳐서 병원에 간단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전화 좀 받아라.’
현관문에 붙어있는 한 장의 메모쪽지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모가 다쳤다니! 도대체 어디를 얼만 큼 다친 걸까? 제발 많이 다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전화 앞을 서성이며 초조하게 입맛을 다셨다. 병원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고⋯ 이모의 안부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 얼굴 같은 데를 다친 것은 아닌가? 내일 모레 시집갈 사람인데 어쩌지...’
나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렸다.
초조하고 지루한 시간이 흘러, 아홉시 무렵이 되었을 때였다. 그제 서야 이모는 아빠와 장래 이모부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했다. 엄마는 그 뒤에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천천히 들어오셨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대뜸 이모 앞에 나서며, 이모를 찬찬히 훑어 봤다. 다행히 얼굴엔 상처가 없었으나, 발등에 흰 붕대를 잔뜩 감고 있었다.
“커피 잔을 발등에 떨어뜨렸단다. 뜨거운 커피에 데고, 커피 잔 파편에 약간 다쳤어. 한 일주일은 걷기 힘들단다.”
엄마는 쯧쯧 혀를 차시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셨다.
“이모도 참! 조심하지 않고서. 내일모레 결혼식은 어떻게 해?”
“그러게 말이요. 조카님. 이 덜렁이 신부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 걱정이야.”
미래의 이모부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들 그러고 싶었겠어요? 유난히 커피 잔이 불안정 한데다, 긴장까지 했으니 그렇지⋯ 유미 너까지 이모를 덜렁이 취급할거냐?”
궁지에 몰린 이모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모의 얼굴은 발갛게 익어서 금방이라도 톡 터질 것 같았다. 스스로도 너무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긴... 우리 집 커피 잔의 목이 워낙 가늘어서 위험스럽긴 해. 아무리 살살 옮겨도 자꾸 흔들리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사실은 우리 집의 커피 잔이 유난스럽게 불안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통의 커피 잔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이모가 약간 덜렁거리는 편이라서 엎거나 쏟는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안 되겠어... 이모 발등의 안전을 위해서 내가 발 벗고 나서야지. 이모에겐 좀 특별한 커피 잔이 필요할거야.’
나는 이모 발의 흰 붕대를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커피 잔은 왜 다른 그릇보다 더 잘 넘어질까?’
나는 커피 잔과 받침을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물 잔이나 밥그릇들은 쟁반 위에 놓고 흔들어도 별 이상이 없는데, 유독 커피 잔만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혹시, 이 잔 받침 때문은 아닐까?’
나는 받침 접시를 빼버린 채, 커피 잔만을 쟁반 위에 놓고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받침이 있을 때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잔 받침이 쟁반 바닥보다 더 미끄러우니 이런 사고가 생기지... 하지만 받침접시를 아예 없앨 수도 없고 이를 어떻게 하지?’
나는 받침접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만, 이게 뭐지? 접시 한 가운데가 약간 오목 하잖아?’
받침접시는 커피 잔이 놓이는 부분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접시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 오목함은 커피 잔이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그러니 이것을 더욱 오목하게 해주면 좋을 거야.’
나는 즉시 도예가인 첫째 이모에게 부탁하여 새로운 커피 잔을 만들어 보았다. 잔 받침의 오목한 부분을 깊게 하는 바람에 받침 접시가 약간 두꺼워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예쁘게 보였다.
“어머, 유미 네가 디자인한 커피 잔이니? 너무 예쁘다!”
막내이모는 커피 잔을 들고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꽃처럼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덜렁이 이모를 위해 내가 특별히 만든 커피 잔이야. 이모 발등을 보호해야지!”
“그래, 소중히 쓸게.”
꽃다운 새색시인 이모는 눈같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연신 방글방글 웃었다. 발등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인데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결혼이 그렇게 좋은 건가? 나도 나중엔 저렇게 예쁜 신부가 될 수 있을까?’
선머슴아 말괄량이 유미가 아리따운 신부가 되는 날은 언제일까? 그땐 누가 나에게 커피 잔을 선물할까?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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