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뿌리개 주둥이 펌프
“앗! 아빠 여기 새끼 붕어 한 마리가 살아 있어요.”
낚시터에서 집에까지 세 시간. 그동안 모두 죽었을 줄 알았던 붕어 한마리가 살아남아 힘겹게 아가미를 놀리고 있었다.
“모두 죽었는데 이것만 용케 살았구나.”
아빠는 그 작은 붕어가 대견한 듯 환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이 붕어⋯ 우리가 집에서 길러볼까? 작고 야무지게 생긴 것이 재롱을 떨 것 같은데...”
“우와 찬성이어요! 아까부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측은했었는데⋯ 당장 어항을 사다가 넣어줄 게요!”
나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렇게 해서 새끼 붕어 대장이는 우리 집 한 식구가 되었다. 은빛 비늘에 날씬하고 날렵하게 빠진 몸통, 짧은 듯 하면서도 야무진 꼬리와 지느러미, 창섭이네 열대어가 부럽지 않은 우리나라 토종 붕어가 내 절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와! 아빠 이것보세요 대장이가 물구나무서기를 해요. 하하하! 모래 속으로 막 파고 들어가는 데요. 자기가 미꾸라지인줄 아나 봐요.”
우리 식구는 어느새 대장이의 묘기에 푸욱 빠져, 대장이의 팬이 되고 말았다. 나선형으로 몸을 비틀거나, 날치처럼 홱 날아서 어항위로 펄쩍 뛰어 오를 때면 우리는 환호성과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다.
특히 우리 식구 중에서도 나는 대장이와 더욱 친했다. 대장이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더욱 활발하게 헤엄을 치고 꼬리를 흔들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하곤 했다.
“견우는 엄마보다 대장이가 더 좋은 게로구나. 책가방을 던져 놓자마자 어항으로 달려가다니!”
“헤헤헤, 대장이가 저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그렇다면 엄마를 도와서 어항의 물 좀 갈아줄래? 견우가 직접 하면 대장이도 좋아 할게다.”
“네!”
내가 씩씩하게 대답하니 대장이도 무척 좋은 듯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자, 이젠 모래들을 헹구어 줘야지. 모래에 가라앉은 물고기 똥이나 찌꺼기들도 모두 깨끗이 치워줘야 하거든⋯”
“이 모래를 전부요?”
“그럼!”
내 이마엔 어느새 구슬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쉽게만 생각했던 어항 치우기가 너무나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만약 내가 대장이를 그토록 예뻐하지 않았다면, 도중에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힘드니? 견우야.”
“조금요. 그런데 엄마는 힘들지 않으세요. 전 그냥 물만 퍼내고 다시 채워주기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하하하. 그렇게만 해선 안 돼지. 견우도 견우 방에 더러운 쓰레기가 마구 돌아다니면 기분이 좋겠니? 더구나 대장이는 아주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붕어인데⋯”
엄마의 말씀에 찬성하듯 대장이가 천천히 어항의 주위를 돌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머리 속에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대장이의 집을 청소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은 좋지 않아. 만약에 일을 쉽게 할 방법이 있다면 좀더 즐겁게, 자주 대장이의 집을 청소할 텐데⋯’
나는 어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어항의 물을 퍼내는 일만 쉬워져도 모든 일이 한결 편해질 텐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석유를 옮겨 담을 때 쓰는 펌프가 떠올랐다.
‘맞았어. 바로 그거야! 석유펌프. 그것을 이용하면 훨씬 편하고 일이 빨라질 거야!’
나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석유펌프로 어항의 물을 빼내니 바닥에 물이 떨어질 염려도 없었고, 공연히 팔 허리를 구부리며 힘들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단 한가지의 문제점만 없다면 아주 만족할 만 했다.
‘물과 함께 모래가 펌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나. 이렇게 되면 오히려 일이 귀찮아지는데⋯’
나는 다시 고민에 빠져 들었다. 모래는 빼놓고 어항의 물과 물고기의 배설물만 펌프로 빨아들였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견우야 무슨 고민이 있니?”
며칠 동안 힘없이 지내는 것이 이상했는지, 아빠가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아니요. 별것 아니 구요. 대장이의 어항이...”
나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꼭 다물었다. 이번 일은 아빠의 도움 없이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흠 그래. 기분이 안 좋을 땐 화단에 물을 주면서 마음을 가다듬어라.”
아빠는 더 이상 묻지 않으시고 나에게 물뿌리개를 건네주셨다.
‘앗! 이것이다.’
물뿌리개를 건네받는 순간, 나는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뿌리개의 주둥이에서 내가 그토록 찾던 해결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펌프의 끝에 이 물뿌리개의 주둥이 부분을 달아보자. 그러면 이 작은 구멍들로 물은 빨려 들어오고 모래는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나는 신이 나서 석유펌프와 물뿌리개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며칠씩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니 속이 시원했다.
“아빠! 아빠! 모든 문제가 해결됐어요.”
나는 신이 나서 아빠께 일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는 동안에 아빠는 말없이 빙긋이 웃으시며 내말을 잠자코 들으셨다.
조용히 웃으시는 아빠의 눈. 어쩐지 모든 일을 알고 계셨던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