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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대신 빛으로
초조하고 불안해서 밥맛이 없을 지경이었다. 약속한 날짜는 다가오는데 완성은 고사하고 해결책도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덜컥 해버렸담.”
나는 섣부른 약속과 지나친 자만심에 대해 후회를 하고 또 했다.
약 두어 달 전쯤, 나는 아주 특별한 친구를 사귀었다. 경진이라는 이름의 눈이 큰 여자아이였다.
처음에 경진이를 봤을 때, 나는 무척이나 말이 없고 얌전한 아이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경진이는 얌전해서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말을 아예 할 줄 모르는 애였던 것이다.
경진이가 농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첫인상이 좋아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라니... 참 당황스런 일이었다. 경진이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을 밤새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경진이를 만나면 만날수록 경진이가 좋아졌다. 이야기도 글씨를 써서 할 수 있으므로, 어떤 때는 경진이가 농아라는 사실까지 잊곤 했다. 어쨌든 우리는 아주 친해졌고 거의 매일을 같이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 비 오는 날이 싫어...”
경진이는 난데없이 공책위에 이렇게 적었다.
“빗소리를 난 들을 수 없거든. 그래서 항상 빨래를 비에 젖게 해.”
경진이는 씁쓸히 웃으면서 창밖을 가리켰다. 창 너머로 하얀 빨래들이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트 위에 커다랗게 적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줄게. 비의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보게는 해줄게.”
그때는 점말 모든 것이라도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늘의 별이고 달이고 모두 따다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비 경보기를 만들어 주기로 경진이와 철석같이 약속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난 미완성된 경보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경보기는 거의 80프로이상 완성되어 있었다.
충격에 의해서 +극판과 -극판이 연결되면 전원이 이어지면서 신호기의 전등이 깜빡여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기계의 전원연결 부분을 비와 연관 짓는데 실패한 것이다.
즉, 비가 내림과 동시에 전원이 탁 연결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다.
“비...비...”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는 물로 되어 있으니... 물에 영향을 받는 것을 이용해야 하는데...’
생각은 자꾸 제자리를 맴돌며, 더 발전하질 않았다. 머리가 꽉 막힌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참 생각 끝에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경진이 처럼 공책에다 모든 것을 적으면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비에 영향 받는 것’
나무와 풀- 생기가 나고 푸릇푸릇 해진다.
스폰지- 무거워지고 부피도 커진다.
쇠- 녹이 슨다.
종이- 찢어진다.
한참을 쓴 후에 살펴보니, 대부분의 것들은 비가 많이 온 후에야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하나 종이만은 금방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종이의 두께가 얇으면 얇을수록 비에 조금만 젖어도 약해져서 찢어지는 것이었다. 잘만 이용하면 중요한 재료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것을 경보기와 연결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다.
종이가 비에 젖어 약해지면 무게에 견디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니 해답은 금세 나왔다.
경보기의 극판을 원통형의 용기에 설치하고 그 위를 아주 얇은 종이로 뚜껑을 만들어 씌웠다. 그런 다음 종이 위에 작은 쇠구슬을 놓았다. 만약 비에 젖으면 쇠구슬이 밑으로 떨어져, 전원을 연결하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모든 것을 완성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경진이와 함께 실험을 하였다. 비 대신으로 작은 물뿌리개를 이용해서 물을 살살 뿌렸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종이가 찢어지면서 쇠구슬이 원통 안으로 굴러 들어가고, 뒤이어 신호기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대성공인 것이다.
우리 둘은 너무나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었다. 마치 이세상이 전부 내 것인 것만 같았다.
“고맙다.”
공책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할 만큼 큰 글씨로 쓰이어진 말을 읽는 순간, 어쩐지 경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이 느껴졌다.
“고맙다. 이젠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어”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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