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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지 않는 유리 막대
“자, 이제 황산구리를 물에 넣고 유리막대로 잘 저어 주세요.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해요.”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천천히 실험을 진행시켜 나갔다. 간혹 옆 사람과 떠들면서 실험에 소홀히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많은 아이들은 즐겁게 수업을 들었다.
“어때요? 아주 예쁜 빛깔의 용액이 되었죠?”
나는 비커 안에서 출렁이는 바다 빛 용액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예쁘네. 지난여름 가보았던 동해안의 빛깔이야.’
나는 실험대 쪽으로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비커에 담긴 용액을 더 자세히 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쨍그랑”
아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유리파편이 튀어 올랐다. 정신을 차려 바닥을 보니 유리막대가 동강이 난 채로 구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몸을 숙이면서 책상위에 놓인 막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반 친구들의 시선은 모두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요. 휴지통도...”
선생님께서는 능숙한 솜씨로 유리파편들을 쓸어 담으셨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수업을 시작하셨다. 나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잔뜩 긴장했는데, 뜻밖에도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신 것이다.
‘휴우...’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리 막대를 깨뜨린 데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좀더 주의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친구들의 유리 막대를 보며 계속 아쉬움을 달래었다.
“그래. 이모가 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일이 많았지.”
“이모도?”
나는 눈이 둥그레져서 이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유리 막대는 둥그렇게 되어있는데다 미끄러워서 책상위에서 잘 굴러다니잖아. 그러니 바닥에 떨어져서 잘도 깨지지.”
은지가 이모의 말을 듣더니 불쑥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오빠랑 이모는 바보야! 뭐 하러 유리로 막대를 만든담. 단단한 쇠로 만들면 깨지지도 않을 텐데!”
은지의 말에 이모는 빙긋이 웃었다.
“어이구! 바보는 너다!! 쇠로 막대를 만들면 물속에 어떻게 넣느냐? 녹이 스는데!”
나는 은지를 살짝 흘겨보며 핀잔을 주었다.
“자자, 그렇게 싸우지들 말고 사이좋게 놀아야지. 어때? 둘이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는 것이...”
이모는 은지와 나의 손을 맞잡아 쥐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구르지 않는 유리 막대를 만들까?’
나는 책상에 턱을 고이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들만 계속 오갔다.
“오빠! 나 우유팩 좀 열어줘.”
언제 들어왔는지 은지가 곁에 다가와 우유팩을 불쑥 내밀었다.
“이런! 깜짝 놀랐잖아. 넌 오빠가 연구 중일 때는 꼭 귀찮게 굴더라!”
나는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리며 우유팩을 빼앗아 열어 주었다.
“자! 빨대까지 끼워 줄 테니 흘리지 말고 먹어!”
나는 빨대를 우유에 끼워 넣고 먹기 좋게 구부려 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구부러지는 빨대라... 유리막대도 그렇게 구부리면 쉽게 구르지 못할 거야.’
나는 재빨리 알코올램프를 켜서 유리 막대를 가열하였다. 그리고 물러진 막대를 약 15도정도 구부렸다.
‘좋아! 이것을 다시 한 번 구부리는 거야. 그럼 손잡이처럼 쓸 수 있겠지?’
나는 막대를 다시 가열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대쪽으로 다시 15도를 구부렸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모양의 유리막대가 완성되었다.
“야호!!”
나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 소리를 지르며 진이의 빰에 뽀뽀를 해주었다.
“어머나. 우리 준이가 해냈구나. 어디 보자.”
이모는 나의 유리 막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초조하게 이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것은 마치 재판장의 판결문을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과 같았다.
“굉장하구나! 우리 준이! 정말 놀랬는데!”
“야호!”
우리 셋은 잔치라도 벌어진 듯이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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