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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단 나르기 용 들것
하늘 한편이 서서히 검게 물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비를 퍼붓던 소나기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지? 지금 비가 오면 안 되는데...”
나는 걱정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논바닥에는 아직도 미처 옮기지 못한 볏단들이 사방에 흩어져 사람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빨리 해야겠어. 아무래도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
볏단 너머로 허리만 보이는 누나에게 나는 큰 소리로 비 소식을 알렸다.
“알아! 나도 봤어. 빨리빨리 해라. 이야기를 하는 새에 하나라도 더 날라.”
누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로 퉁명한 대꾸만 보내왔다.
논 끝자락에는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볏단을 나르고 계시고, 이웃집 종범이 형은 누나 곁에 바짝 붙어서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볏단은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비구름은 계속 몰려드는데, 일은 줄어들 기미를 안 보이고...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볏단을 모두 옮기지도 못했는데 비가 쏟아진다면 그야말로 낭패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볏단을 한꺼번에 두 세단씩 들고 열심히 뛰었다. 마른 논바닥을 세차게 밟으면서 볼이 빨개지도록 뛰어 다녔다.
하늘은 벌써 반편이나 어두워지고 말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햇볕이 쨍쨍 났었는데, 어느새 먹구름이 까맣게 덮여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추수가 모두 끝난 후에 사정을 봐서, 새 운동화를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 이 벼들이 모두 무사히 걷혀져서 시장에 팔려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도 멋진 운동화를 신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비가 내리면 많은 벼를 망칠 테고 그러면 내 운동화도 싼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일주일 전에 읍내 신발가게에서 봐두었던 운동화를 떠올리며 더욱더 힘을 내었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비가 오기 전에 이 벼들을 몽땅 옮겨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어! 병수야. 위험하다. 그렇게 뛰면 넘어져!”
등 뒤에서 종범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들은 척도 안하고 한 아름의 볏단을 들고 냅다 뛰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기우뚱 하더니, 나는 중심을 잃고 논바닥에 철퍼덕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쳇!”
나는 힘껏 콧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맨바닥에 부딪친 무릎이며 턱이 얼얼하게 아파왔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많이 다치지 않았니? 어디 보자!”
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살피었다.
“괜찮아. 얼른 볏단이나 날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으니까.”
나는 턱까지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찔끔 참으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어느새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어쩐다?’
논바닥에는 아직도 꽤 많은 볏단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빨리 뛰어 다녀도 제대로 걷어낼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기껏 옮겨봐야, 서너 개 정도이고...’
아무리 계산해도 많은 볏단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새삼스레 오기가 피어올랐다.
“사람은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동물이란다. 토끼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송사리처럼 헤엄치지도 못하니 말이야. 그런데도 우리가 토끼와 송사리 심지어는 호랑이까지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생각의 힘 덕분이야. 그것이 바로 과학의 힘과 연결되는 것이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머리를 써야지. 힘만 믿으면 뭘해!”
나는 스스로 다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볏단 더미와 버려진 허수아비, 그리고 쌀 푸대 자루 두어 개 뿐이었다.
허수아비는 분해하면 두어 개의 긴 막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쌀 푸대와 결합하면... 갑자기 머리 속에 밝은 빛이 번쩍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허수아비를 분해했다. 거기서 얻은 막대와 쌀 푸대로 들것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들것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그저 긴 막대를 푸대의 양편에 끼워 넣기만 하면 되었다.
“누나! 이리 와봐. 이걸로 옮겨!”
나는 들것 위에다 욕심껏 볏단을 얹어 놓고는 누나를 불렀다.
“어머! 이게 뭐니?”
누나는 들것을 보더니 입을 벌렸다.
“볏단 나르기 용 임시 들것이라고나 할까? 질문을 그만하고 빨리 나르기나 하라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를 쳤다.
과연 생각의 힘은 대단했다. 보잘 것 없는 들것 이었지만, 다섯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볏단을 옮기는 것이었다.
볏단을 모두 옮기고 정리가 거의 끝날 무렵, 마침내 하늘에서는 무거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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