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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은 장갑
거리마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색색의 아름다운 불빛이 비쳐 들었다. 문방구에는 반짝이는 트리 장식이 잔뜩 걸려있고, 그 옆 레코드점에서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퍼져 나왔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도 웬지 밝아 보이고....
삼일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모두가 들떠서 즐거워하는데, 나는 조금도 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우울하고 슬퍼서 엉엉 소리 내어 울고만 싶었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넌 내 친동생이 아니야. 엄마가 너를 다리 밑에서 주어 왔어. 그래서 네 애기 때 사진이 없는 거야.”
작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하던 누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왔다.
‘내가 주어온 자식이라니, 엄마, 아빠가 친부모가 아니었다니...’
나의 눈에선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 불행이 바로 나에게 닥친 것이다.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엄마, 아빠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집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야영 놀이 하던 일이나, 아빠랑 텃밭에서 고구마를 키우던 일 등, 어느 것 하나 버릴만한 것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이처럼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엄청난 비밀을 모른 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다. 빙그레 웃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 왈칵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찾아야해. 그리고 왜 나를 버렸는가. 따져 봐야지.’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이 미웠다. 그리고 또 한편 나를 길러주신 지금의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 은혜는 꼭 갚아 드려야지. 친부모를 찾아 떠나기 전에 뭔가 좋은 선물을 하고...’
나는 주먹을 굳게 쥐고,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쳤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지금의 부모님과 보낼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가하게 감상에 젖어 울고 있다면 영영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엄마, 아빠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그런 선물을 만들어야 했다.
‘뭐가 좋을까? 멋진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돈은 없고...’
나는 뺨을 훑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한숨을 쉬었다.
짧은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거리는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허연 김이 새어 나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다리는 가늘게 떨렸다. 내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모두 옷깃을 여미고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 상점 앞에서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아저씨도 장갑을 낀 채로 힘겹게 잔돈을 세고 있었다.
‘바로 저거야!’
나는 무디게 움직이는 아저씨의 손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장갑과 잔돈... 아주 근사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맞아. 잔돈이나 토큰을 다루려면 장갑을 벗어야하지. 추운 날, 버스를 탈 때나 동전을 줄 때 일일이 장갑을 벗으려면 얼마나 번거로운가. 더구나 엄마가 끼는 장갑은 가죽장갑이라 벗고, 끼기도 힘든데...’
나는 추위도 잊고 정신없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면 장갑을 벗지도 않고 동전을 셀 수 있을까?’
나는 일부러 두툼한 장갑을 끼고 동전을 지갑에 넣었다 빼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장갑을 낀 손은 무뎌서 확실히 잔돈을 다루기엔 불편했다.
‘가만, 동전을 만질 땐 주로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쓰는 구나. 그렇다면 장갑에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의 비밀 문을 만들면 되겠다.!’
나는 쾌재를 부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밀 문이란 다름 아닌 작은 구멍이다. 즉 엄지와 집게손가락의 장갑 부분을 칼로 살짝 갈라내어, 필요할 땐 그 구멍으로 손가락 끝만 나오도록 한 것이다. 물론 보통 때는 그 부분으로 바람이 새어 들지 않도록 넉넉히 여유를 두어 매직테이프로 딱 붙여 들 수 있도록 하였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나는 곱게 싼 두 켤레의 장갑을 등 뒤에 감추고 엄마, 아빠의 앞에 섰다. 눈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내 목소리는 하염없이 떨렸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친부모가 아니라니?”
엄마와 아빠는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누나가 말해줬어요. 감추시지 않아도 돼요.”
“말도 안돼! 네 누나가 거짓말 한거야. 그런 장난에 속다니!”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까지 쉬셨다.
“야, 그런데 이 장갑 너무 아이디어가 좋다. 아주 멋있는데?”
누나는 엄마와 아빠, 나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제 서야 나는 내가 누나에게 속은 것을 알아차렸다.
“이럴 수가!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데...”
나는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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