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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토막 양말
‘어이구 발 시려...’
나는 책상 밑에서 발을 계속 꼼지락 거렸다. 얼마나 추운지 발을 얌전히 나두었다간 동태마냥 꽝꽝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키가 큰 것이 이런 때는 정말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난로와는 제일 먼 뒷줄에, 게다가 바로 출입문 옆에 앉아야 하다니... 키가 10센티만 팍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찌르릉’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 나는 잽싸게 난로 옆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나마 발을 녹여야 이 긴긴 하루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양말을 두 켤레나 신었어. 그런데도 발이 시렵다.”
“나는 엄마한테 졸라서 털신까지 샀는걸.”
종호는 커다란 토끼 귀가 달린 털 실내화를 쑥 내밀어 보였다.
“어이구 그게 뭐냐? 차라리 아기 젖병을 빨고 다녀라. 6학년이나 되가지고 유치원생 흉내 내냐?”
“이게 어때서? 발이 좀 덜 시리니까 난 살 것 같다. 유치원생으로 보든 말든 난 상관 안 해.”
종호는 징글맞게 웃으면서 입을 샐쭉거렸다. 토끼모양의 실내화와 종호.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찌르릉’
또다시 운명의 종소리는 울려 나오고,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뒷발을 질질 끌고 자리로 되돌아 왔다.
‘나도 종호 마냥 털 실내화를 신어?’
‘아니야! 6학년이면 제일 큰 형인데 우스운 꼴을 보일 수는 없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사나이 박상민이 발등에 커다란 토끼 귀를 달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가락 끝이 찌르르하게 떨려왔다. 마치 전기 고문을 받는 것처럼 발가락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으윽 발가락만 좀 덜 시려도 참을 만 할 텐데.’
나는 다리를 비비 꼬았다. 쉬는 시간에 열심히 녹여 놨던 발가락이 다시 꽝꽝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양말을 두 켤레나 신었는데도 이렇게 발이 시리다니... 신발이 작아서 세 켤레는 못 신을 텐데.’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나의 머리 속에는 온통 발가락과 양말, 난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어, 선생님이 금붕어마냥 뻐끔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양말을 한 켤레만 더 신어도 좀 나아질 텐데... 이번에 새 신발을 사달라고 졸라볼까? 조금 큰 것을 사면, 양말 한 켤레 쯤은 거뜬히 신을 수 있는데...’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게 돌아 다녔다. 발에 동상이 걸려, 발가락을 자른 사람들의 이야기며, 발이 얼어서 시퍼렇게 변한 환자의 이야기까지 모두 떠올랐다.
“너 뭐하냐? 부처님처럼 부동자세로 앉아서... 수업 끝났어. 집에 안가냐?”
토끼장군 종호가 눈앞에서 어른 거렸다.
“발이 너무 시려서 정신이 나갔었어.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죄다 붕어로 보이는 것 있지. 뻐끔뻐끔 거리는 붕어 말이야.”
“그러 길래 내가 뭐랬어? 털신을 신으랬잖아. 호랑이 무늬도 있어.”
나는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됐네. 이 사람아. 발가락에다 솜을 넣고 다니는 게 낫지 털신은 못 신겠다.”
나는 오기가 나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참내, 괜한 데에 고집이야. 그러다간 네 발은 반 토막만 남게 될 거다.”
“반 토막?”
나는 종호의 말꼬리를 되씹으며 중얼거렸다.
“반 토막... 반 토막이라... 그래 바로 그거야! 양말을 반 토막으로 만드는 거야!”
종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러냐 상민아? 어디 아파?”
“그게 아니고, 잘 생각해봐. 발 중에서 가장 시려운 부분은발가락 이잖아. 그런데 신발은 작고, 양말을 세 켤레씩이나 신을 수는 없거든... 그러니 발가락 부분만 덧신을 수 있는 양말을 만드는 거야. 물론 신발을 신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테고...”
종호는 한참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니까 발가락 부분만 양말을 더 신는 것이 되겠네?”
“그래! 바로 그거야. 어떠냐? 내 생각이.”
“반 토막 양말이라... 그것 괜찮은데?”
종호의 입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좋았어! 이 사나이 박상민은 올해도 꿋꿋하게 겨울을 보내는 거야. 야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나이. 으 하 핫!”
나는 밀림의 왕자 사자처럼 커다랗게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상민아, 내가 본 털신 중에는 사자모양도 있었어.”
아이고 머리야! 종호의 병을 고칠 약은 없을까?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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