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석이 붙은 장갑
너무나 속이 상하고 안타까웠다. 가슴 속에서 묵직한 것이 숨통을 꽉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칠게 숨을 들이 쉬며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는 아빠 옆에 앉아, 나는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만약 아빠나 엄마가 봤더라면, 어린애가 무슨 한숨을 쉬냐고 나무라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거친 손과 검게 탄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한숨이 쉬어지고 가슴이 몹시 아팠다.
손끝에 수많이 맺힌 피멍. 손가락이 파랗게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입술은 온통 부르트고 찢어져서 검붉은 피가 메말라 붙어 있었다.
요즈음 과수원에 일이 많다고 하시더니, 그 덕분에 상처가 생긴 듯 했다. 며칠 전에는 나무 가지에 긁혔다며, 손등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오셨었다.
그 전에는 엄마가 나무등걸에 부딪혀서 정강이에 커다란 멍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여간 과수원 일을 하실 때면 항상 크고 작은 상처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실려 나오는 복숭아나 사과들은 전부 예쁘고 탐스럽기 그지없는데, 왜 그것을 가꾸는 일은 그렇게 험하고 힘든 것일까?’
나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꼭 엄마와 아빠가 일하는 과수원에 가보기로 작정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가방을 마루에 홱 던져놓고 과수원을 향해 냅다 뛰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부터 내내 줄곧 그곳에서 일하고 계실 터였다.
해가 무시무시하게 내리쬐는 산중턱. 가지마다 작은 복숭아를 잔뜩 매단 키 작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 차 있는 곳에,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작은 복숭아 열매에 봉을 씌우는 일이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이었다. 작은 종이 봉지를 복숭아에 씌우고, 그것을 작은 철침으로 고정 시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의 눈에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만이 보였다.
아빠는 내가 온 줄도 모르시고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열심히 종이봉지를 매만지고 계셨다. 한손으로 종이봉지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작은 철침을 가지고 그 봉지 끝을 여미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을 빨리 하기 위해 그 철침을 서너 개 가량 입술로 물고 있다가 사용하고 계셨다. 아마도 두 손을 모두 쓰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러니 그 뾰족한 철침이 입술을 상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시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마음이 묵직하게 아파왔다. 내가 철이 든 탓일까? 엄마랑 아빠가 새삼스레 더 늙으신 것 같이 보였다.
나는 그 광경을 차마 더 볼 수가 없어 과수원 길을 되짚어 내려오고 말았다. 유난히 햇볕이 따갑게만 느껴졌다.
‘철침에는 몸에 안 좋은 나쁜 성분도 있을 텐데.’
나는 아빠의 입술에 물려있던 긴 철침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중금속 중독이라도 걸릴 것 같아서 영 마음이 안 놓였다.
‘철침을 좀더 편리하게 사용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저만치 차내면서 조바심을 내었다.
“아아... 철침들이 스스로 알아서 손에 착착 붙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때였다. 번개같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자석이라면 가능한 일이야!”
나는 신나게 오솔길을 뛰어 내렸다. 자석을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붙여두면 철심을 자유롭게 떼었다 붙였다하며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막상 실험을 하자니 문제가 생겼다. 도대체 어느 곳에다 자석을 설치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허리에다 주머니처럼 찰 수 있게 만들고 또 손목이나 목에 걸 수 있게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모두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더 좋은 것이 있을 거만 같았다.
‘손에다 직접 붙이는 것이 가장 좋은데...’
나는 손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손등 위에 철침을 가득 붙여 두면 손을 움직이기에 가장 편리 할 것 같았다.
“맞아! 손에 직접 끼는 장갑이 있었잖아! 장갑에 자석을 붙이면 될 거야!”
마침내 결론을 찾아내곤, 나는 너무나 기뻐 팔짝팔짝 뛰었다. 우울했던 마음이 일시에 풀리는 것만 같았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태양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는 과수원의 귀빈석에 앉아 엄마와 아빠가 일하시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아빠의 손에 끼워진 낡은 장갑.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커다란 자석이 붙은 장갑. 비록 접착제가 덕지덕지 붙어있진 했지만 정말 사랑스럽기만 했다. 엄마아빠의 입술을 고이 간직해줄 장갑이기 때문에.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