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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를 모두 쓸 수 있는 병
“언니! 언니!”
동생 난이가 계속 칭얼거리며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난이는 한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 도대체 그치지를 않았다.
“너! 왜 그러는 거야. 이유를 똑똑히 말해봐.”
나는 귀찮아져서 눈을 부릅뜨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말했잖아. 나 방학숙제로 발명품을 하나 해가야한다고.”
“그런데 왜 나한테 와서 졸라? 네가 스스로 생각하지!”
“치! 언니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난이는 원망 섞인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 서야 나는 동생과 했던 약속을 기억
해냈다.
‘아이고! 내가 그런 약속을 왜 했던고... 내 발명숙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나는 경솔했던 내 약속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 이미 한 약속을 되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군. 아무것이나 일단 쥐어 주고 이 자리를 모면해야지.’
나는 짐짓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처럼 심각하게 말했다.
“물론, 언니가 너와의 약속을 잊을 수 있겠니? 연구 과제를 생각해 두었지.”
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잉크병을 발견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기 저 잉크병 보이지? 저 잉크병이 네 연구과제야. 저것은 그냥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것 같아도 실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숨겨져 있단다.”
“무슨 문제?”
난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세심하게 관찰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의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봐. 그리고 나에게 오면, 그때 내가 가르쳐줄게.”
나는 엄숙하게 말하며 잉크병을 난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난이는 무슨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소중하게 그것을 들고 나갔다.
나는 겨우 난이를 떼어놓은 것을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그 일을 잊고, 곧바로 다시 나의 연구과제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언니, 언니! 나 좀 봐!”
한동안 잠잠하던 난이가 또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때마침 나는 연구과제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잔뜩 골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버럭 냈다.
“난이! 너 정말 언니 괴롭힐래? 언니 공부하는 것 안보여?”
내가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니, 난이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언니 바보!!”
난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에 들었던 공책을 내던지고는 뛰어나가 버렸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자 갑자기 내게 죄책감이 생겨났다.
‘내가 너무했구나.’
나는 나의 행동을 가슴깊이 뉘우치며 난이의 공책을 집어 들었다. 공책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뭔가가 잔뜩 쓰여 있고, 간혹 그림도 그려있었다.
나는 그 그림들에 흥미가 생겨 공책의 내용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어머나 이럴 수가.”
공책에는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잉크병에 대한 문제가 적혀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점들도 많이 지적하고 있었다.
‘잉크병의 밑바닥이 납작하여서, 잉크가 적게 남아 있을 때는 펜촉에 잉크를 묻히기 힘들다고?’
나는 난이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탄복하고 말았다. 또한 그 해결책이 놀라운 것이었다.
‘잉크병의 밑바닥을 깔때기 같은 모양으로 좁혀두면 남은 잉크가 한곳에 모여서 끝까지 쓸 수 있다.’
난이의 생각은 논리정연하고, 아주 실용적인 것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감탄의 감탄을 거듭하였다.
내가 살며시 방을 나왔을 때, 난이는 거실의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난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난이야!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해내다니! 언니는 정말 놀랬어.”
나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쩐지 지금까지 내가 아무런 발명품도 못 만들어 낸 것도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과 오만 때문인 것 같이 여겨졌다.
“다, 언니 덕분인걸! 언니가 문제를 내지 않았다면 난 아무것도 못했을 거야.”
난이는 얼굴에 예쁜 홍조를 띠고 수줍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만드는 첫 번째 잉크병을 언니에게 주고 싶어. 그 잉크를 써서 언니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으라고.”
“정말 고맙다.”
나는 난이를 꼭 안아 주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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