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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즙 살충제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꼭꼭 숨어있는 오래된 절들... 나는 왠지 그곳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포근하게 밟히는 부드러운 흙이나, 나뭇가지 사이로 살며시 불어오는 실바람들... 그 모든 것이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휴일만 되면 어김없이 절을 찾으신다. 그 덕분에 나는 불교신자가 아닌데도 절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엄마, 절은 참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해요. 이곳에 오면 나도 갑자기 얌전이가 되어버린다니까요.”
“호호. 그러니? 그렇다면 우리 미경이를 이곳에다 떼어놓고 가야겠구나! 일주일만 지내면 아주 요조숙녀가 될 테니 말이야.”
엄마는 가볍게 웃으시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화장실만 좋다면, 나도 그렇게 해도 좋겠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심통이 나서 삐딱하게 말했다.
“화장실이 어때서? 무섭니?”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요. 게다가 구더기가 득실득실...”
나는 화장실의 모양을 떠올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도대체 화장실을 왜 안 고치는 거예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끔찍스러워요.”
“글쎄, 그런 면도 있긴 있지... 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화장실도 하나쯤은 있는 게 좋지 않겠니? 그것도 일종의 역사유물인데 말이야.”
“화장실이 역사유물이라고요?”
“그럼 물론이지...”
나는 엄마의 말씀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화장실이 역사유물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반짝이는 금이나 은만이 유물은 아니란다.”
계속 잠자코 있으시던 아빠가 입을 여셨다.
“저번에 박물관에 갔을 때 미경이도 보지 않았니?”
아빠의 말씀에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박물관의 진열대에는 이상하게 생긴 돌들도 잔뜩 전시되어 있어 나를 지루하게 했었다.
“맞아요. 흔히 볼 수 있는 돌덩이들도 많았어요.”
“그거 보렴. 역사유물이란 것은 그처럼 범위가 넓단다.”
아빠의 말씀에 나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유물이라 생각하니 그토록 끔찍스러웠던 화장실도 왠지 멋져보였다.
‘하지만... 이 구더기들은 참을 수가 없어!’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금세 뛰쳐나오고 말았다. 화장실 자체는 역사유물이라 생각하고 참을 수 있었지만, 구더기는 정말 너무나 징그러웠다.
“안되겠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좀 가려야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넓은 나뭇잎을 발견하고는 그것으로 벌레들 위에 떨어뜨려 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 신기한 일이네...”
나는 나뭇잎 위에서 하얗게 말라 죽은 벌레들을 보며 크게 놀랐다. 그것은 내가 일주일전에 화장실에 넣어둔 그 잎이었다.
‘이 잎이 구더기를 죽이는 작용을 한 것이 틀림없어!’
나는 즉시로 스님에게 뛰어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오호, 이것은 오동나무로구나...”
스님은 그 광경을 보시더니, 크게 놀라워 하셨다.
“그래, 오동나무 잎을 이 안에 넣어두면 벌레들이 사라지겠구나.”
스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오동잎을 화장실 안으로 넣으셨다.
“잠깐만요, 스님 이 잎의 살충효능을 더욱 높일 방법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잎에서 즙을 짜내거나, 혹은 열로 익히면 더 좋은 효과를 낼지도 모르잖아요.”
나의 말에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우리 함께 실험을 해보자꾸나.”
우리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모아다가 하나하나 실험을 해보았다. 혹시 오동잎보다 더 좋은 효과를 가진 것이 있나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여러 개의 작은 상자에 각각 구더기를 다섯 마리씩 넣어 두고, 거기에 측백나무 잎, 오동잎, 아카시아, 독미나리, 할미꽃, 복숭아 잎 등을 각각 넣었다.
그 결과 할미꽃과 복숭아 잎이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 실험으로는 각 잎의 사용방법에 따른 효능을 살펴보았다.
먼저 각 잎을 빻아 즙을 내고, 끓여서 차를 만들고, 또 가루를 내어 보았다. 그 결과 즙을 낸 경우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
“우리 미경이 덕에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었구나.”
엄마와 아빠께서는 나의 실험보고를 들으시고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도, 그 발명으로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미경이 자신일걸요. 그렇게 징그러워하던 벌레들을 모두 없앴으니...”
“아니지... 파리는 많은 병을 옮기는 해충이잖소. 그런데 그것을 퇴치할 방법을 찾아냈으니... 엄청난 발견이지!”
아빠의 말씀에 엄마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셨다.
“아이참 당신도... 제가 그걸 모르겠어요. 농담으로 한말인데...”
엄마의 수줍은 표정에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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