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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햇빛 가리개
새파란 오이가 주렁주렁 달린 밭이랑을 나는 신나게 뛰어 다녔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어 이마에선 땀방울이 줄줄 흘러 내렸지만 조금도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솟고 가슴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얘야! 참 먹어라. 좀 쉬면서 해야지!”
밭둑 너머에서 할머니가 커다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손짓을 하셨다. 그 옆에서 누렁이도 굵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짖어대고 있었다.
“힘들지 않니? 휴일도 쉬지 않고 이렇게 밭일을 하다니... 나야 좋다만...”
할머니는 거칠고 굵은 손으로 풋고추를 집어 주시며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참내 어머니도... 이편이 더 좋다니까요. 집에서 있으면 하루 종일 잠만 자게 되요. 이렇게 나와서 일도 하고 어머니 아버지도 뵈니 좀 좋아요?”
아빠는 멋 적게 웃으셨다.
일주일에 한번의 나들이. 우리 식구는 오랜 회의 끝에 주말을 항상 할머니 댁에서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찾아뵙고, 손수 야채를 가꾸어 자연학습도 하고. 엄마는 무공해 야채를 먹을 수도 있다며 아주 대찬성이셨다.
“자가용을 타고 오니까 하나도 안 불편해요.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비록 중고에다 크기도 작은 소형 차였지만 나에게는 아주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주말마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모두 그 차 덕분이니 말이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저 앞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자꾸나. 땀도 식히고, 물고기를 잡으면 매운탕도 끓여 먹을 수 있을 거야.”
“우왓! 대찬성이어요!”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숲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도 좋고, 고추장과 풋김치에 비벼 먹는 보리밥도 맛있고, 정말 너무 즐거운 시간 이었다.
“어, 어 그쪽으로 고기가 갔다. 이리로 몰아.”
“아빠는 그 돌 사이로 전부 빠져 나가요. 거기를 막아야 돼요.”
아빠와 나는 커다란 그물을 개울에다 담가두고 고기를 몰아갔다. 그러나 물고기가 영리하고 재빠른 때문인지 한 마리도 못 잡고 번번이 헛손질만 했다.
“아무래도 아빠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 같아요. 고기들이 전부 빠져 나가잖아요.”
“그게 아니고 아빠의 마음씨가 착해서 고기들을 일부러 놔준 거야.”
“에～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발을 마구 굴러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차가운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져 튀어 갔다.
“이런, 흠뻑 젖어 버렸구나. 개구쟁이 녀석 같으니라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물이 줄줄줄. 내가 물장구를 친 바람에 아빠와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 마냥 흠뻑 젖고 말았다. 속옷까지 몽땅.
“안 되겠다. 옷을 갈아입어야지. 아마 엄마가 여분의 옷을 가져 왔을 거야. 가방을 차 안에 두었던가?”
나는 아빠의 뒤를 졸랑졸랑 쫓아 개울을 올라갔다. 따가운 햇볕에 달구어진 조약돌이 발밑에서 데굴데굴 굴러 다녔다.
“우왓! 뜨거워!”
차문을 여는 순간,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차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팍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차가 열을 받았구나. 하루 종일 햇볕아래 있었으니...”
아침나절에 길게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는 어느새 걷어지고, 차는 햇볕 아래서 후라이 팬 마냥 지글지글 달구어져 있었다.
‘차가 검은 색이어서 햇볕을 더욱 끌어당긴 모양이구나.’
나는 차 안에서 가방만을 끄집어 낸 뒤 얼른 빠져 나왔다. 차 안이 너무나 더워서 꼭 찜통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차문을 열어 두어야겠다. 물도 좀 뿌리고... 에어컨을 켜두면 되겠지만, 기름을 아껴야 하니.”
아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셨다. 차체가 너무 열을 받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어휴 저 열기를 식히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겠는 걸... 햇볕만 가린다면 저렇게 뜨거워지진 않았을 텐데...’
나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동차도 더위에 시달려 신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저 햇볕만 가려주면 될 텐데...’
그때 언뜻 자동차의 백미러가 눈에 들어왔다.
‘맞았어! 바로 저거야. 자동차에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시켜 버리면 되는 거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빠! 좋은 방법이 있어요. 반짝이는 은박지로 가리개를 만들어 차 위에 씌우면 돼요. 그러면 햇볕을 반사시키니까 차가 많이 뜨거워지진 않을 것이어요!”
“그것 좋은 방법이구나. 다음엔 당장 그렇게 해봐야겠다. 자동차 햇빛가리개라... 으음 좋은데.”
아빠는 내 머리를 한참이나 쓰다듬어 주셨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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