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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우산
“으아악 어떻게 해! 비가 온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마침내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 몰라. 우산도 없는데... 조금만 참았다가 비가 올 일이지!”
운동장에 동그랗게 파이는 작은 물웅덩이들을 보며 여자애들은 벌써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교실 여기저기에서 강아지가 꿍얼대는 듯한 신음소리도 들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굵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걱정 섞인 푸념을 하는 중이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비는 쉽사리 그칠 것 같지 않았고, 우산은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엄마가 주시는 우산을 그냥 두고 나왔는데... 정말 아까워...”
태호가 이마에 커다랗게 석 삼자를 만든 채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도 마찬가지야.”
엄마가 건네주시던 까만 우산이 눈앞에 삼삼하게 어른거렸다.
“할 수 없지 뭐. 우리 사나이답게 씩씩하게 가자. 저까짓 비쯤이야 단번에 뚫고...”
태호는 호기 있게 큰소리를 쳤지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자신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의 저편에서 이편까지 커다란 번개가 하늘을 찢어내듯 번쩍였기 때문이다.
‘아, 큰일 났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사나이다운 씩씩함은 고사하고, 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어떡하지... 넌 매일 우산을 가지고 다니더니 오늘은 왜 안 가져 왔냐?”
태호의 얼굴엔 또다시 커다란 석 삼자가 생겼다. 목소리도 풀이 죽어 있었다.
“야, 내 가방을 보고서도 넌 그런 말이 나오니? 도시락 가방에 미술 준비물에... 오늘은 국어사전까지 가져왔단 말이야.”
나는 배가 불룩 튀어나온 가방을 가리켰다. 금세라도 책들이 툭툭 불거져 나올 듯했다.
“하긴, 나도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우산을 가져오기 싫더라고... 가져왔다가 비가 안 오면 짐밖에 더 되냐?”
태호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른들은 꼬마들이 무슨 걱정이 있어 한숨을 쉬냐고 나무라면서 못하게 하시지만, 이런 경우엔 정말 한숨만 나온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리 말고도 이런 문제 때문에 우산을 안 가져 온 친구들이 있는 듯, 교실은 한동안 무거운 책가방 문제로 일대 토론장으로 변해버렸다.
“휴유! 이천 년대에는 인공적으로 날씨를 조절할 수 있다던데...”
태호는 심술궂게 얼굴을 잔뜩 찌푸리곤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들었어. 인공 태양이나 인공 바람도 있다더라.”
“그뿐 일줄 아냐? 에어 카가 나와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길은 모두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 길이라더라. 그때엔 무거운 책가방을 들일도, 우산을 쓰고 다닐 일도 없는 거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태호는 모르는 일이 없었다. 항상 입버릇처럼 유전공학이니, 로봇이 모든 일을 하는 세상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난 더 바랄 것이 없겠어. 하지만 그건 너무 먼 훗날의 이야기잖아. 난 지금 당장 비를 맞지 않을 방법이 필요해.”
“비를 맞지 않을 방법?”
“그래. 가령 아주아주 가볍고 작은 우산 말야. 접으면 주머니 속에 쏘옥 들어가는... 그런 우산만 있다면 무거운 가방이니, 갑자기 내리는 비에도 아무 걱정 없잖아.”
태호는 한참동안 나를 말똥 말똥히 바라보았다. 평소의 장난 끼 어린 그런 표정이 아닌 왠지 심각하고 어른스런 표정이었다.
“주머니 속에 쏘옥 들어가는 우산이라...”
태호는 한참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런 우산이 있다면 우리 학생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풍선같이 맘대로 줄었다 늘었다하는 우산이 있을 수 있겠냐?”
“풍선?”
나는 태호의 말을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바람을 집어넣으면 부풀어 오르고 바람을 빼면 작게 쪼그라드는 풍선?’
갑자기 머리 속이 환해지는 것같았다.
“맞았어! 태호야. 풍선이 해답이야. 에드벌룬이나 수영튜브처럼 우산도 그렇게 만드는 거야. 바람을 집어넣으면 팽팽하게 커져서 우산이 되고...”
나는 비가 오는 골목을 상상해 보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우산에 바람을 집어넣어 유유히 거리를 걷는 사람들. 할머니들도 무겁지 않은 우산이 좋다며 웃으시고... 한결 부드럽고 즐거운 거리가 될 것 같았다.
“으음... 아무래도 과학자는 네가 해야겠다.”
태호는 한참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뭐야. 그럼 내 아이디어가 좋단 말이니?”
“좋은 정도가 아니다. 정말 멋있는 아이디어야. 나도 그런 우산이 당장 있었으면 좋겠는걸.”
태호는 일순 엄숙한 표정을 짓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야, 너 이 발명으로 유명해지더라도 나를 잊으면 안 된다!”
“참내 물론이지!”
나는 피식 웃으면서 태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내 마음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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