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어지지 않는 의자
“어이구, 이 녀석아 좀 말썽 그만 부려라.”
나는 말썽장이 아기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려 주었다.
이 세살이 갓 넘은 무법자는 사실 우리 집 식구가 아니었다. 어느 날 엄마가 불쑥 데려오신 불청객인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불쌍한 아이란다. 잠시 동안이지만 우리가 보살펴주어야 해.”
엄마는 하얀 천에 쌓인 아이를 다독거리며 나에게 당부, 또 당부하셨다.
“엄마는 우리 성이를 믿는다. 아기와 잘 놀아주고, 또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나는 엄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약속을 했었다. 그때, 나의 눈에는 그 아기가 불쌍한 천사같이 보였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아기는 천사가 아니고, 작은 악마였다.
“야 임마! 너 어디다 낙서를 한거야?”
“엄마! 아기가 또 내 공책을 찢었어요.”
“으악, 내 미술숙제가 오줌으로 범벅이 됐어!”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명을 지르고 열 번 이상씩 놀래야 했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아무 곳이나 기어 올라가서 뛰어 내리는 통에 온 집안 식구가 초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제발 좀 의자에 올라가지 마라!”
나는 아기에게 통사정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 작은 악마는 내 부탁을 비웃는 듯 계속 방실방실 웃을 뿐이었다.
‘에잇! 나도 모르겠다. 내 친동생도 아닌데 뭐 하러 이렇게 신경을 써야한담. 그냥 내버려두면 될 걸...’
나는 마침내 아기의 끊임없는 말썽에 지쳐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기를 돌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새삼스레 아기에게 사고가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기가 엄마 화장품을 휘저어 보던 말던, 화장지를 모두 풀어, 온 방에 널어놓던 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니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가방을 이리저리 흔들며 신나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집 앞에 웬 엠블런스이지?”
나는 대문 앞에 서있는 구급차를 보고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혹시...’
나는 아기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마구 뛰었다. 그 얼굴이 제발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정신없이 달렸다.
“하아하아, 엄마! 엄마! 우리 아기... 우리 아기...”
나는 현관을 박차고 들어가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하고 엄마부터 찾았다. 그러자 방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엄마가 조용히 나오셨다. 엄마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움직임은 힘이 없어 보였다.
“역시...”
나는 힘없이 그 자리에 꿇어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얘가 왜이래? 너 누구랑 싸웠니?”
갑자기 엄마가 내 팔을 붙드시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의 태도에 나는 당황하여 내가 생각했던 바를 자세하게 말했다.
“아니야! 아기는 저렇게 새근새근 잘도 자는걸.”
엄마는 아기가 자는 방문을 열어 보이시며 나를 안심 시키셨다. 그제서야 나는 헛된 걱정에 허둥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 내가 아기에게 너무 무관심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 동생인데...’
나는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아기에게 안전한 의자를 선물해야 겠다.’
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작은 목표를 세웠다.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아기들의 안전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아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아용품 전문점을 다니며 유아용 의자의 특징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특징적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자의 다리와 몸체의 각도가 일반 의자보다 약 15도씩 더 벌어져 있군...’
유아용 의자는 그 다리가 직각으로 뻗어있지 않고 약간 바깥으로 경사지게 꺽여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의자는 어느 쪽으로도 넘어지지 않았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보조기구를 만들면 되는데...’
나는 기존의 의자에 보조 장치를 덧붙여 유아용 의자와 같은 특징을 갖도록 할 계획이었다.
‘의자가 넘어지는 것은 의자의 다리가 사방으로 받쳐주는 힘이 없기 때문이지... 만약 유아용 의자처럼 의자의 앉는 부분보다 다리부분의 차지 면적이 넓다면 어떨까?’
나는 생각을 멈추고 발의 모양을 보았다. 발의 모양에 뭔가 비밀이 있기에 사람이 직립보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순간 내 머리 속에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거야! 의자에 발을 달아 주는 거야!’
나는 재빨리 공작소로 가서 ㄴ자 모양으로 쇠를 구해왔다. 물론 ㄴ자에서 밑의 획이 더 긴 것을 택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의자의 네다리에다 모두 달아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ㄴ자 모양의 쇠가 의자의 지지대 역할을 하며 옆이나 뒤로 쓰러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야! 성공이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 뒤로 우리 집의 무법자는 의자에서 의자로 탐험을 계속 하며 무럭무럭 커갔다.
“이녀석은 분명, 산악가가 될거야.”
“암. 그렇고 말고...”
의자에 올라가 재롱을 떠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