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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가 엉키지 않는 회전 고리
“오빠, 오빠, 이것 좀 봐줘.”
연이가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부르며 뛰어왔다.
“하아, 하아. 오빠, 오빠 이것 봐. 이것.”
연이는 가쁜 숨을 씹어 삼키며 힘겹게 한마디씩 내어 뱉었다.
“자자, 진정해. 연이야 뭣 땜에 이렇게 서두르니? 숨좀 돌리고 천천히 이야기해봐.”
나는 연이를 가까스로 진정시켜 자리에 앉혔다.
“뭘 보라는 거야? 어디 오빠한테 보여 봐.”
연이는 수줍은 미소를 함빡 띄우며 두 손을 바짝 앞으로 내어 보였다. 그 손에는 작은 옷걸이가 들려있었다.
“이게 뭐야? 옷걸이잖아...”
“호홍... 그건 보통 옷걸이가 아니라구...”
“뭘? 달라 보이지 않는데...”
나는 옷걸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보통의 얇은 철사 옷걸이 였는데, 바지걸이 부분에 작은 종이관이 끼워져 있었다.
“하긴 다르기는 다르구나. 이 종이관은 뭐하러 끼운거니?”
“그것이 이 옷걸이의 비밀이라구...”
연이는 뭔가 큰 비밀을 말하는 사람처럼 작게 속삭이며 다가앉았다.
“이 종이관을 안끼운 보통의 옷걸이에 바지를 오래 걸어두면 어떻게 돼?”
“글쎄...”
나는 뜻밖에 물음에 어리둥절해져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빤 그것도 몰라? 바지에 주름이 생기잖아. 아주 흉하다고...”
나는 연이의 꾸중 섞인 핀잔을 듣고서야 엄마가 늘 하시던 불평이 생각났다.
“맞아. 애써 다림질 한 아빠 바지가 반으로 접혀 자욱이 났다고 엄마가 속상해 하셨어.”
“거봐. 그런데 내가 개량한 이 옷걸이는 그럴 염려가 전혀 없지롱.”
연이의 설명을 들으니 그럴싸하게 보였다. 바지걸이가 둥글게 되었으니 주름이 생길 이유가 없고 종이관은 호일이나 랩등을 다 쓰면 나오는 쓰레기이니 아주 안성맞춤, 일석이조의 발명이었다. 정말 저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야! 연이가 오빠보다 백배 낫네. 정말 멋있다.”
나는 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해 주었다. 연이가 정말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보다 어린 연이도 저런 생각을 하는데, 난 그동안 뭘 했지?’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지만, 엄마 아빠께 칭찬받는 연이의 모습을 볼때면 괜히 가슴 한구석이 찌릿찌릿하게 저려왔다.
‘그래. 이렇게 부러워만하면 뭘 하냐? 나도 연이처럼 멋진 생각을 해봐야지.’
나는 연이의 옷걸이를 바라보며 굳게 다짐했다. 부끄러운 오빠가 되기는 정말 싫었다.
“선생님, 저도 연이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 수 없을까요?”
“오호라. 우리 건이의 경쟁심에 또 불이 붙은 게로구나.”
선생님께서는 나의 설명을 찬찬히 들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런 발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발명의 재료가 될 수 있단다.”
‘모든 것을 재료로 삼을 수 있다...’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서 맴돌았다.
‘참. 나도 바보 같지. 그냥 무턱대고 뭔가를 이루려했다니. 연이도 분명 오랜 시간을 고민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걸꺼야.’
나는 성급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랬더니 머리속이 환하게 밝아오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도 새롭게 보였다.
“건이야! 어서 나와라. 아빠랑 태극기를 달아야지.”
아빠는 개천절을 맞이하여 아침부터 일찍 국기를 다시느라 분주히 움직이셨다. 매번 국경일마다 국기를 다는 일은 아빠와 나의 몫이었다.
“자, 이제 됐다. 국기는 나라의 얼굴이니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단다.”
나와 아빠는 국기를 바라보며 경례를 하였다. 골목에는 많은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저런. 아빠 국기가 바람에 접혀 엉키고 있어요.”
“그렇구나. 보기에 정말 안 좋구나.”
“바람 따라 국기가 돌아가면 좋을 텐데...”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국기를 오래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아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바로 그거예요. 연이의 옷걸이를 힌트로 하면 아주 좋은 작품이 생길 거예요.”
나는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가서 시험작품을 만들었다. 국기 대에다 파이프를 끼워 넣고 그것이 회전축을 따라 돌 수 있게끔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파이프의 아래 위로 국기를 잡아맸다. 바람에 따라 국기가 돌 수 있도록 회전 고리를 만든 것이다.
“야! 역시 우리 오빠야.”
연이와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국기를 보며 크게 웃었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우리 태극기가 바람을 따라 이동하며 힘차게 펄럭였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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