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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과일 깎기 골무
나연이는 손놀림이 다소 둔하다.
아직은 어린 탓도 있겠지만, 얌전하고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에 비해 약간은 덜렁대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도 어머니께 잔소리를 듣는다.
“나연아, 여자는 3씨가 좋아야 한단다.”
“알아요. 엄마! 마음씨, 맵씨, 그리고 소옴씨...”
“저런, 또 낼름 말을 가로 챘어요.”
“죄송해요 엄마, 하지만 저는 맵씨와 마음씨는 엄마를 닮았으니까 볼 것도 없고... 그래서 이담에 엄마처럼 맨 날 퍼주다가 가난뱅이가 될까봐 염려되는 면도 없진 않지만.”
“아휴, 저 날랜 입 좀 보게”
“그리고, 요리 솜씨는 이 다음에 3개월만 요리학원에 다니면 조리사 자격증까지 따는 데 문제없을 거고, 또오 바느질 솜씨로 말씀드리면 옷은 사 입고, 꿰맬 것은 세탁소에 가면 끝인데, 결국 이 모든 것을 해결 할 방법은 돈이고, 저는 돈만 잘 벌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엄마!”
나연이의 말에 어머니는 기가 차다는 듯 할 말을 잊으신 눈치였다.
“저 재잘대는 입을 보니 너의 선생님께서 속 꽤나 타시겠구나. 너희들을 가르치시려면.”
“이래뵈도 엄마, 학교에선 모범생이라니까요!”
“내가 두 손 들었다. 저 사과나 좀 깎아봐라.”
“제가 하면 엄마 손이 심심하실 텐데요. 히히히”
“앓느니 죽지. 아서라, 책이나 봐”
이렇듯 요리조리 피하며, 가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연이에게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일이 닥쳐왔다.
얼마 전, 실과시간의 일이다.
“자, 이번 시간에는 과일을 깎아 상 차리는 실습을 하겠어요. 준비물은 다 가져왔겠지요?”
“예, 선생님!”
아이들은 목청도 크게 대답하며, 기다렸다는 듯 법석을 떨었지만 나연이는 속으로 은근히 마음이 졸여졌다.
‘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젠 꼼짝없이 걸렸군. 어쩌지!’
그러나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사과를 한 번도 깎아본 적이 없는 나연이지만 서툰 솜씨나마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손을 놀렸다.
사과의 살을 다 깎아내면서도 사과 하나를 무사히 깎을 수 있었다.
“오, 예!”
자신감이 생긴 나연이는 두 개째 사과를 깎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말을 건넸다.
“나연아, 접시 하나만 빌려 줄래.”
나연이는 사과를 깎으면서, 가방 속의 접시를 꺼내가라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순간 일이 벌어졌다.
“아얏!”
잠시 방심한 사이에 나연이는 칼로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베어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나연이는 빨간 피가 멍울져 흘러내리는 손가락을 보며 현기증을 느꼈으나, 손가락을 움켜쥐고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 참, 나처럼 과일 깎는데 서툰 사람들이 손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과일이나 채소를 깎는 방법은 없나?’
실과시간이 그럭저럭 끝나고, 다음 시간에도, 집에 돌아와서도 나연이는 반창고가 붙어있는 손가락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했다.
‘뭐, 좋은 수가 없을까?’
그런데 마침 실이 필요하여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
“엄마, 반짇고리 어디 있어요?”
“그건 왜? 오늘부터 얌전해지기로 했니? 우리 덜렁이가.”
“놀리지 마세요. 엄마 말씀 안 듣고 까불다가 손을 베었어요.”
“저런, 그러니 조심하라는 거야,”
나연이는 어머니가 내미시는 할머니의 반짇고리에서 굵은 실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반짇고리 뚜껑을 닫으려는 찰나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우왓 바로 이거다.!”
할머니께서 쓰시던 손때 묻은 조그만 골무였다.
그 골무를 보는 나연이의 머릿속으로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이불 호청을 꿰매시며 손에 끼고 계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으이그, 귀여운 것.”
나연이는 빤짝하고 떠오른 아이디어에 신이 나서, 골무를 손가락에 끼고 뽀뽀를 해댔다.
“그래, 바로 이걸 이용하는 거야.”
과일이나 채소 등을 깎으면서 가장 다치기 쉬운 곳이 엄지손가락과, 검지, 장지라고 나연이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네!”
왜냐하면 사람마다 손가락의 길이나, 둘레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골무의 크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숙제였던 것이다.
“맞아, 골무를 손가락마다 다르게 낄 수도 없고... 어쩌지?”
나연이는 어머니의 방을 나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골무의 형태를 연습장 위에 그려보고, 생각하다가 문뜩 고무장갑을 떠올렸다.
‘그래 고무라면 어느 크기에도 잘 맞힐 수 있어. 늘어나고 좋고 하는 것이 문제없이 되니까!’
나연이는 그 순간 마치 발명가라도 된 것처럼 종이 위에 예쁜 골무를 그려 놓았다.
“명절 날 떡을 썰거나, 칼질을 하시다가 어른들도 흔히 손을 베시는데 이 안전한 골무를 끼고 한다면 손을 보호하는데 그만이겠어!”
나연이는 스스로를 칭찬하며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마치 많은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짱인데. 발명은 재미있어.”
나연이는 이 다음엔 더욱 노력해서 발명왕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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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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