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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보송 그림 물통
수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미술시간을 좋아하고, 그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지난 주말에는 아빠 엄마와 함께 야외에 놀러나갔는데, 그 때도 수진이는 화구를 가지고 갔었다.
“수진아, 너도 동생처럼 뛰놀지 않고 그림만 그릴래?”
어머니의 말씀에도 아랑곳없이 하얀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는 수진이를 보고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다.
“쟤가 할아버지를 닮았나? 조용하게 앉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
“글쎄요. 화가가 되려나 봐요.”
부모님도 수진이를 포기하고 동생과 공놀이를 시작했다.
수진이는 호수와, 하늘과, 나무와, 풀들을 스케치하고 남은 자리에 적당한 도구를 잡아, 바로 공놀이 하는 아빠 엄마와 동생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요건, 모르셨을 거야!’
맑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 찰랑대는 파란 호수, 그리고 새파란 잔디위에서 아이와 함께 즐거워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였다.
평화스럽고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의 가족소풍을 그리는 행복을 아마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수진이는 속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크레파스로 형형색색의 옷을 입혔다.
회색 구름, 연두색 잔디, 투명한 하늘, 은빛 물결의 호수, 그리고 따뜻한 가족,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의 합창들......
이윽고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수진이가 일어서는 것을 보니 갈 때가 다 된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오. 허허허 자식도...”
그러면 어김없이 달려오는 동생에게 수진이는 슬며시 그림을 보여준다.
“누나, 다 그렸어? 어디 봐. 와, 여기 아빠 엄마와 내가 있네.”
동생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수진이의 마음도 매우 상쾌했다.
“정말 멋진 그림이구나. 이젠 집으로 가자. 오늘 소풍은 끝.”
“랄 라라, 룰룰 랄라～”
수진이네 식구들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요일 셋째 시간.
‘와, 즐거운 미술시간... 흐흐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들뜨면서 멋진 그림을 그릴 것 같은 예감에 수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자. 모두 준비되었지요? 그럼 지금부터 그리도록 하세요. 제목은 자유.”
선생님의 말씀에 수진이는 신나게 손을 놀렸다. 이미 머리 속에서 구도를 잡았고, 스케치는 수진이의 특기였다.
‘이만하면 내 맘에 쏙 들어!’
수진이는 스케치를 끝낸 그림에 만족해하며 색칠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통에 물을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장실로 간 수진이는 기분이 잡쳐, 이마가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에잇 이게 뭐야!”
지난 미술시간에 귀찮아서 물통을 대충 씻었더니 물통의 주름진 곳에 물감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채 남아있어 새로 뜨는 물도 지저분하게 되는 것이었다.
수진이는 다시 물통을 잘 닦고 나서 물을 새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받아서 교실로 왔지만 신경질적으로 화가 남아있어 그림이 제재로 그려질 것 같지 않았다.
수진이는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도 물통에 대한 개운치 않은 생각에 물통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그림에 몰두하다 보니 물통 생각은 자연히 잊혀졌다.
“드디어 완성이군. 어디 보자.”
수진이는 완성된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어딘지 모르게 흡족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그 짜증스럽게 색칠한 부분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할 수 없지 뭐.”
어떻든 이제 그림도구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자 수진이은 그림도구들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오늘처럼 다음 시간에 짜증이 나지 않도록 하려면 깨끗이 잘 닦아야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깨끗이 닦으려 했지만 물통의 주름진 곳에 칸칸이 시커먼 물감들이 박혀있어 잘 닦이지 않았다.
주름 사이를 닦는 것도 불편했고, 그 사이에 물기가 남아있어 가방에 넣으면 책도 젖을 것 같았다.
수진이는 화가 나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물통이 너무 불편해,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편리한 물통이 될지 생각해 보았으나, 영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가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유 급식 시간이었다.
“다 마신 우유팩은 깨끗이 씻은 뒤 납작하게 눌러 놓으세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습관처럼 우유팩을 씻어 납작하게 누르던 수진이는 그 순간 ‘아!’하고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수채화용 물통도 우유팩처럼 접을 수 있도록 만들면 되겠어.’
물통은 원형이 아닌 사각형으로 만들고, 우유팩처럼 꽉 누르면 접혀지는 그런 모양이라면 양도 줄어들고, 주름이 없어 물감이나 물기가 틈새에 남아있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수진이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와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재료가 마땅하지 않아 연구가 더 필요했다.
수진이는 이번 일을 통해 생활을 하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불편하다’고만 생각지 말고 ‘어떻게 하면 좀더 편리하게 할 수 있나?’를 궁리하기로 했다.
궁리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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