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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래 빨래 줄
“글쎄 난 양보할 수 없어.”
“나도 안돼!”
“그럼 난 어쩌라고. 나도 내 방이 갖고 싶단 말이야.”
“내가 어떻게 아니? 네가 잘 생각해보렴.”
“언니랑 오빠랑 다 차지하고 이제 남은 건 창고방밖에 없단 말야.”
“하여간 네가 알아서 해.”
그토록 무책임한 말만 하다니⋯ 나는 너무나 분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다른 집에선 막내들이 제일 사랑도 많이 받고 예쁜 옷, 맛있는 음식도 많이 차지한다던데 이상하게 우리 집에선 막내는 찬밥신세일 뿐이다. 옷도 언니가 입던 것을 물려 입고, 매일 이것저것 잔심부름만 하고, 방도 혼자 따로 쓸 수 없고...
“억울해! 이번엔 절대로 내방을 갖고 말거야.”
너무나 속이 상해서 나는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언니나 오빠는 못들은 척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쳇, 두고 보라지. 내가 그냥 있을 줄 알고?’
나는 오기 있게 두 눈을 부릅뜨고 새로 이사 갈 집을 그린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방이 네 개, 주방이 하나, 베란다, 창고로 쓰일 쪽방이 한 칸, 그리고 욕실. 아무리 뒤지고 또 뒤져도 내가 따로 쓸 방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어쩐다. 지금처럼 할머니랑 계속 방을 같이 써야 하나? 언니랑 방을 같이 쓰자고 할까? 아니야, 여우같은 언니보단 할머니가 낫지. 하지만⋯’
막내라는 무거운 짐은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이젠 초등학교도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어엿한 숙녀가 자기 방도 못 갖다니⋯ 벽에 좋아하는 가수나 탤런트의 사진도 붙이고 싶고, 밤에 촛불 아래서 편지를 쓰거나 시집을 읽고 싶은데 자기 방이 없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니 너무 억울한 일이었다.
‘엄마한테 졸라볼까? 아니야 엄마한테 조른다고 없던 방이 생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방을 차지하면 남는 것은 창고로 쓰일 작은 방밖에 없는데 그곳을 내가 점령하면 온갖 잡동사니들을 넣어둘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창고를 방으로 쓸까? 하지만 물건들은?’
창고에 들어갈 물건들은 꽤 많았다. 여름에 쓰는 돗자리, 선풍기, 물놀이 기구와 아빠 바둑판, 겨울에 쓸 팬히터랑 두꺼운 커 텐, 스키장비, 아빠 낚시도구, 오빠 야구장비 등등 이루 셀 수 없었다.
‘물건들을 베란다에다 보관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데⋯ 하지만 베란다에는 빨래를 널어야하니 그럴 수도 없고.’
나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야무지게 먹어도 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새집에서도 내 방을 갖지 못하는 구나⋯ 후우 하는 수 없지.’
나는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멀리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방에 대한 나의 미련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싶었다.
‘펄럭 펄럭’
세차게 부는 바람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소리를 내며 크게 나부꼈다. 그런데 바람이 내 마음의 미련을 날리지는 못했는지 공연히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세상은 불공평하구나. 사춘기가 다가오는 예민한 감성의 소녀는 조그만 쪽방도 못
가지는데, 생각도 없는 빨래들은 이 넓은 공간을 몽땅 차지하구! 나랑 반만 나눠 가져도 내가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텐데.’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베란다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은 공간이었다. 창고에 쌓인 물건을 저장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았다.
‘가만, 빨래는 항상 베란다의 윗부분만 차지하지? 만약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서서 빨래를 널고 걷는다면?’
나의 머리 속에 천천히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빨래가 널린 밑 부분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그래 맞아. 사람이 움직이는 대신 빨래 줄이 움직이면 되는 거야. 도르래! 그래 도르래를 사용하면 되겠다!’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렇게 한순간에 해결되다니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 이렇게 멍하니 있을 것이 아니라 당장 실험을 해보자!”
나는 총알같이 달려가 커다란 도르래 네 개와 굵은 빨래 줄을 샀다. 평소엔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가 이번엔 아주 가깝게 생각되었다.
도르래를 장치하고 빨래 줄을 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베란다의 양끝에 도르래를 두개씩 고정시키고 그 도르래에 의지하여 빨래 줄을 팽팽히 돌려 매어 두었다. 그리곤 슬쩍 빨래 줄의 한쪽을 잡아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빨래 줄은 내가 움직이는 대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었다.
“야호! 성공이다. 성공이야!”
나는 너무나 기뻐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밤이 새도록 만세를 부르고, 아무하고라도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것 보라고! 내가 해냈어. 도르래랑 빨래 줄로 멋진 건조대랑 창고를 동시에 만들어 냈다고. 내가 스스로 내방을 만들어 냈어!”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 민 재 (만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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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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