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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표시 샤워기
“앗! 뜨거!”
나는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욕탕의 물이 너무 뜨거워서, 발을 담글 수조차 없었다.
“이 잉... 어른들은 너무 이상해. 이렇게 뜨거운 물 속에 앉아서 시원하다고 하다니!”
나는 원망스레 욕탕 안을 둘러보았다. 아랫배가 툭 불거져 나온 아줌마들이 뜨거운 물을 좍좍 끼얹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여름철에 찬물로 시원한 샤워를 즐기는 사람들만 같았다.
“앗 뜨...뜨거!”
또 다른 아이가 비명을 꽥 질렀다. 무심결에 물을 끼얹다가 놀란 모양이었다. 어지간히 뜨거웠는지, 그 아이는 다리를 퍼덕이며 꽤 오랫동안 호들갑을 떨었다.
‘어휴, 얼마나 뜨거울까?’
나는 내가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것 마냥 얼굴을 찌푸렸다. 그 아이의 당황함이나 놀람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호들갑스런 난리에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못들은 척, 못 본 척. 태연히 앉아 때만 밀고 있는 것이었다. 두 아이나 뜨거운 물에 놀랐는데도 어른들은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중목욕탕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욕탕 물을 뜨겁게 하다니, 나 같은 어린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씻으란 말인가?
나는 화가 나서 때수건을 집어 던지고는 욕탕의 수도꼭지를 노려보았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꼭지에서 뜨거운 김을 풍기면서 물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찬물의 수도에서도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지만, 물은 좀체 식을 생각을 안했다. 아마도 뜨거운 물의 온도가 너무 높은 때문인 것 같았다.
‘저렇게 수도를 아무렇게나 틀어 놓고 무관심하게 있으니, 욕탕 물이 뜨거울 수밖에 없지⋯’
욕탕 물은 더욱더 뜨겁게 변해 있었다. 나는 얼른 뜨거운 물의 밸브를 잠가 버렸다. 잠깐이나마 찬물만 쏟아지면 욕탕 안의 물이 한결 나아질 것 같았다.
“어머나 차거라. 누가 이렇게 물을 차갑게 한담.”
갑자기 욕탕 안이 시끌벅적 해졌다.
‘앗 차!’
나는 놀라서 정신을 번쩍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줌마들이 온통 얼굴을 찌푸리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찬물을 틀어 놓고 씻는 데 열중하느라 그만, 물의 온도를 맞추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사이에 탕의 물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쩐다.’
나는 당황하여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소동은 금 새 가라앉았지만, 가끔씩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물의 온도를 맞출 수가 있어야지⋯ 뜨거운 물을 조금만 세게 틀어 놓아도 금 새 뜨거워져 버리고, 차가운 물을 조금만 틀어도 금방 차가워지니⋯”
“그러게요. 통 알맞은 온도를 찾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온도를 맞추려면 물이 넘쳐 버리기 일 수이고⋯”
나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훔쳐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공중목욕탕뿐 아니라 집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았다. 아침에 간단히 세수할 때조차도 수도꼭지를 여러 번 돌려가며 물의 온도를 맞춰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많은 물을 그냥 흘려보냈던가!
‘맞아. 씻을 때마다 적당한 물의 온도를 찾는 것은 참 번거러워 차라리 수도꼭지에 온도를 표시하면 어떨까?’
나는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 찬물과 더운물이 가장 적당하게 섞이는 온도를 찾아 수도꼭지에 표시하면 되겠다. 그러면 수도꼭지를 얼마나 조절해야 할지 단번에 아니까 애매하게 물을 낭비하지 않겠지? 그리고 목욕물이 뜨겁거나 차가워서 놀라지도 않을 거야.’
“야호!”
나도 모르게 저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뒤통수가 뜨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머리로 집중 되어있을 수많은 시선들이 두려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어휴, 방정맞게 소리는 왜 질렀담.’
위대한 발명 뒤에 시련이 따른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 민 재 (만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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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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