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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 않는 지팡이
‘흐음 저것이라면 딱 적당할 텐데.’ 나는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지팡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검은 윤이 반지르하게 흐르는데다 손잡이 부분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너무나 멋지게 보이는 것이었다. “넌 또 무슨 계략을 꾸미는 거니?” 갑작스런 고모의 기습에 놀라, 나는 화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모는 왜 날 자꾸 의심해? 난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앉아 있었다구⋯”
나는 황급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지만, 고모는 계속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노려 보았다.
“아니야. 너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어. 아까부터 저 지팡이를 잔뜩 노려보고 있던데, 도대체 무슨 음모야?”
귀신같은 고모. 하여간 막내고모의 눈치는 올림픽 금메달감이어서 도저히 속일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솔직하게 실토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만약 계속 오리발을 내민다면 고모는 일주일 내내 나를 쫓아다니며 감시의 눈길을 번뜩일 것이었다.
“알았어. 다 말할게. 사실은 저 지팡이를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
“저 지팡이를? 너 미쳤구나. 저걸 할머니가 얼마나 아끼시는데⋯”
“끝까지 이야기 좀 들어봐. 아주 중대한 일이라구.”
나는 고모의 손을 끌고 집 앞 놀이터로 갔다. 모든 비밀을 털어 놓기에는 놀이터가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그 지팡이를 개조해서 위층 박씨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다고?”
“응. 그 할아버지께서 왼쪽 발이 약간 불편하시잖아. 그런데 그 왼쪽 발을 6·25전쟁 중에 다치셨다는 거야. 부상한 북한군 소년 병을 구하시다가 폭탄의 파편에 맞으셨데.”
“그런데?”
“내 생각엔 그 북한군 소년 병이 자꾸 막내 삼촌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야. 물론 아니겠지만, 할머니가 그러셨잖아. 북에서 피난 오실 때, 막내 삼촌이랑 헤어졌다고⋯ 그런데 누군가가 북한군인 중에서 막내삼촌을 봤다고 했다며?”
“그랬지⋯”
“그래서, 할아버지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 어차피 할머니께선 지팡이도 안 쓰시잖아.”
“글쎄?”
고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개조를 하려 하는데?”
한참 만에 입을 여는 고모의 눈매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잘만하면 고모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 설계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나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지팡이는 발이 네 개가 달린 특수한 것이었다.
지팡이의 끝에 직각으로 구부러진 네 개의 발을 사방으로 달고, 그 각각의 발엔 강력한 스프링과 고무로 보완을 하도록 하였다. 즉, 이것은 지팡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산비탈 등에서 좀더 쉽게 걸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일단은 그럴 듯 하구나.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할머니가 아끼시는 것으로 선물을 하려고 하니? 다른 것을 사용하면 될 텐데⋯”
“할머니가 아끼시는 것이기 때문이지⋯”
고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너! 그럼⋯”
“짐작하는 대로야.”
고모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도와줄께.”
고모의 도움을 받으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팡이의 보조 발은 쇠파이프를 구부려서 사용하였고, 그 끝에는 고무 바킹을 씌워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보조 발에 스프링을 장치하는 일이 꽤나 까다로웠지만 철공 제작소의 도움을 받아 해결 할 수 있었다.
“어때? 멋지지?”
“그래, 발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껜 아주 좋은 선물이 되겠다. 너도 좋은 일을 할 때가 있구나. 매번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더니⋯”
“실수와 실패가 겹쳐서 그런 것뿐이지, 나도 다 잘하려고 했던 거란 말야.”
“알았어. 어쨌든 이번엔 아주 잘했어.”
누나와 나는 베란다를 통해 놀이터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의 작은 벤치에는 박씨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다정히 앉아 계셨다.
“할머니께서 참 즐거워 보이시는 구나.”
“맞아 저렇게 웃으시는 것은 첨 봤어.”
“할머니께서도 이 지팡이를 할아버지께 선물하는 것을 좋아 하시겠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할머니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 민 재 (만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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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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