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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단 가방
책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내려앉을 것만 같다. 게다가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수요일은 정말 끔찍한 날이다. 체육복에 미술도구를 주렁주렁 들고 가야하고, 동화책도 두 권이나 가져가야 한다. 이러니 책가방이 마치 돌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난 먼 미래에 태어나거나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했어.”
은채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미국에는 학생들이 책 몇 권하고 도시락만 달랑 들고 다니더라. 각자 사물함이 있어서 무거운 책이나 체육복 같은 것은 학교에 두고 다녀.”
TV에서 봤는지 은채는 또 미국 이야기다. 매일 미국 이야기만 하는 은채에겐 신물이 났었지만 이번만은 나도 미국의 사물함은 부러웠다.
“좋겠다. 그럼 미국 애들은 이렇게 커다란 스케치북이며 체육복을 들고 다니지 않겠구나. 얼마나 좋을까?”
나는 대학생처럼 책 두 권만 들고 등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간단하고 가볍고, 아무리 더워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어휴! 난 미국처럼 책 두 권만 들고 다니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책가방이 좀 가벼웠으면 좋겠어. 이거야 원. 옴짝달싹도 못하겠으니!”
정숙이는 이리저리로 몸을 비틀었다. 유난히 큰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탓에 정숙이는 걷기도 불편해 보였다.
하긴 무겁고 커다란 책가방 때문에 골탕을 먹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커다란 짐 가방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떤 애는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애는 책가방을 벗어 놓곤 길거리에 선 채로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모두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 모습이었다.
“책가방을 가볍게 할 방법이 없을까?”
나의 물음에 은채와 정숙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하루에 수업을 네 시간만 하면... 그러면 도시락을 안 싸도 되고 책도 덜 가지고 다니잖아.”
“바보야! 그럼 초등학교를 팔년도 넘게 다녀야할 거다.”
은채의 핀잔에 정숙은 고개를 숙였다. 풀이 죽은 모양이었다.
“책을 없애 버리면 간단하잖아. 책을 쓰지 말고 컴퓨터로 공부하면 얼마나 좋니?”
은채의 말에 나는 푸욱 한숨을 쉬었다.
“어이구! 컴퓨터 살 돈으로 미국처럼 사물함을 만들면 되겠다.”
이번에는 정숙이가 큰소리로 은채에게 핀잔을 주었다.
“얘들아 다투지만 말고 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 좋은 아이디어가 없겠니?”
나는 둘의 대화를 듣다못해 짜증을 냈다. 좋은 방법만 생각해냈다 하면 모든 학생들에게 희소식인데 성의 없게 장난 식으로 생각하는 둘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니? 공부를 하려면 책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책가방이 될 수밖에 없지.”
“그렇지 뭐. 누가 대신 들어다 주지 않는 이상, 아니면 대통령이 사물함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우린 이 무거운 책가방이랑 씨름할 수밖에 없지.”
은채랑 정숙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사실 그 애들의 말마따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쉽게 포기해버리면 영영 해결책을 찾지 못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계속 생각하고 노력하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천사처럼 날아 다녔으면 좋겠다. 그러면 벌써 학교에 도착했겠다.”
“책가방 메고 도시락 주머니를 든 천사라! 그것 걸작이다!”
은채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정숙이도 같이 크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함께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천사... 날개... 책가방...’
눈앞에 책가방들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들이 펼쳐졌다. 도시락 가방과 준비물 주머니들도 작은 날개를 달고 두둥실 떠다녔다.
“바로 그거야!”
나는 정신없이 소리쳤다. 드디어 가방을 가볍게 만들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무슨 일이야?”
은채와 정숙이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방에다 풍선을 다는 거야. 그러면 풍선의 힘으로 가방이 공중에 뜰 것 아니야? 그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는 무겁지 않은 가방을 들게 되잖아. 결국 가방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라고!”
나는 흥분하여 신나게 종알거렸다. 금방이라도 풍선이 달린 가벼운 가방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 풍선이 몇 개나 필요한데?”
“아마 수백 개 수천 개가 필요할걸?”
같이 기뻐해 줄줄 알았던 은채와 정숙이는 시큰둥했다.
“풍선이 수백 개나 달린 책가방을 어떻게 매고 다니니? 차라리 그냥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겠다.”
은채는 입을 삐죽 내밀기 까지 했다.
“특별한 풍선을 만들면 돼지! 작지만 효과는 뛰어난 것으로.”
“차라리 사물함을 만들겠다.”
정숙이 마저도 아예 나를 무시했다.
“치! 두고 봐! 내가 꼭 가벼운 가방을 만들 테니까! 너희들은 그때 절대 안줄 거야!”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풍선 가방을 만들겠노라 다짐 하면서.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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