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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열 보온 도시락
나는 흔들리는 뱃전을 부여잡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바람을 타고 비릿한 바다냄새가 몰려왔다.
“어떠냐? 바다낚시 재미있지? 이제 물고기만 잡히면 더욱 신나게 될 거다.”
바다낚시 광이신 아빠는 흠뻑 미소를 지시며 낚시 줄을 늦추셨다.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배가 너무 흔들리는 데요.”
나는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파도를 보며 잔뜩 긴장했다.
“걱정마라. 금 새 잠잠해질 거야. 우리가 너무 빨리 나서는 바람에 밀물이 채 끝나지 않아서 그러는 거니까.”
아빠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셨다. 어쩐지 아빠의 표정은 불안해하는 나를 즐기시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녀석. 얼굴이 하얗구나. 괜찮다니까. 아빠를 믿어. 자, 밀물이 끝날 때까지 밥이나 먹을까?”
아빠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끌어 당기셨다.
“어디보자. 아이 구, 엄마가 도시락을 먹음직스럽게 싸주셨구나.”
커다란 찬합에 새우튀김이니 고기볶음이니, 아주 맛난 반찬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엄마가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시더니 이렇게 멋진 도시락을 준비하신 것이다.
나는 때마침 출출하던 차라 얼른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정말 맛있겠다. 그치 만 좀 차겠는 걸... 보온 도시락에 싸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을 떨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밥이 찰것 같지? 하지만 그렇게 차지 않단다. 먹어보렴.”
‘차지 않다고?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나는 아빠의 말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밥을 한술 떠먹어 보았다.
“어? 정말이네... 정말 안 차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살갗에 닿는 바람은 찬데 밥은 미지근했다.
“녀석... 그렇게 간단한 상식도 모르냐?”
“상식이라고요?”
나는 계속 눈을 껌벅였다. 분명 도시락은 보온이 안돼는 보통 찬합인데.
“저렇게 해가 끊임없이 열을 보내어주잖니. 그 열을 받아 밥이 뜨뜻해진 거지.”
“아하!”
나는 아빠의 설명을 듣고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 놓인 도시락은 햇볕을 받아 그 따뜻함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운 날에도 해가 드는 창가는 따뜻하다는 사실을 내가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그래서 아빠가 항상 보통 도시락에 밥을 싸서 가지고 다니시는구나. 난 또 아빠는 찬밥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지.”
“찬밥?”
아빠는 내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참내... 부끄럽게 시리... 웃지 마세요.”
나는 무안해져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새 바다는 잠잠해졌고 해는 더 눈부시게 빛났다. 나를 서늘하게 하던 바람도 멎었다.
‘저것도 일종의 태양열 이용이네!’
나는 배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도시락을 쳐다보았다. 태양의 열을 받아 밥을 보온하는 것... 어쩐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태양열을 한곳에 모을 수 있으면 되는데... 태양열을 모아서 종이도 태울 수 있으니, 밥을 뜨끈하게 지키는 것도 가능할거야.’
나는 배안을 둘러보았다. 배안에서 즉석으로 보온 기구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때 뱃머리 구석에 검은 종이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거야... 검은 종이는 열을 흡수하는 성격이 있으니 아주 안성맞춤일거야’
나는 깔고 앉았던 스티로폼 조각을 반 토막을 쪼개었다. 그리고 그것의 위에다 검은 종이를 깔았다. 태양열로 덥혀진 밥의 온기가 밑으로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그 위에 도시락을 얹고 다시 검은 종이로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맑은 비닐로 덮었다. 햇빛은 통과하고 바람은 들어오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나는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숨을 죽이고 도시락을 지켜봤다. 아빠는 바닷물에 드리워진 낚시 대를 하염없이 바라보시고 계셨다. 우리 부자는 제각기 다른데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검은 종이를 걷어 내었다.
과연 먹다 남은 밥이 따끈하게 보온이 되었을까? 아니면 오히려 차게 식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오갔다.
“야호! 성공이다.”
나는 너무나 기뻐 소리를 질렀다. 도시락은 조금 전보다 더 뜨끈해진 것이다. 비록 모양은 허술했지만 효과는 만점인 태양열 보온 도시락이 탄생된 것이다.
“이런, 물고기가 문제가 아니구나. 우리 현상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거야말로 대어를 잡은 거나 다름없는데!”
아빠는 뜨끈해진 도시락을 들고 환하게 웃으셨다. 나도 우쭐해져서 멋 적은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이번 바다낚시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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