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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가루를 흡수하는 칠판지우개
“콜록 콜록!”
나는 하얗게 날아다니는 분필가루를 마시며 계속 기침을 해댔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나의 처지는 분필가루와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얼크러진 듯 했다.
쉬는 시간, 칠판을 지울 때마다 분필가루는 한 겨울의 눈보라처럼 풀풀 날아다니며 내 책상 위, 머리, 옷 위에 사정없이 내려와 앉았다.
“얘, 경희야! 살살 좀 지워라.”
애꿎은 청소당번에게 항의를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칠판 글씨를 살살 지우던, 팍팍 지우던 하얀 분필가루는 어김없이 나에게 날아들었으니까.
“어휴, 이 분필가루 좀 봐! 털어야 하겠어.”
“그냥 둬! 다음 시간에 또 뒤집어 쓸 텐데.”
“참, 5반 선생님께서 분필가루 때문에 입원하신거야!”
분필가루를 마실 때마다 기침을 했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입원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어머, 많이 아프시데?”
“글쎄, 수술을 하신다나 봐!”
친구의 말에 점점 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자주 하는 기침과 꼭 무슨 관련이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지? 나도 선생님처럼 병이 나서 입원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책상 위의 분필가루를 보고 있노라니 내 뱃속에도 하얀 분필가루가 저금통의 동전처럼 차곡차곡 쌓여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는 다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우산이라 쓰고 있을까? 선생님께 졸라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달라고 할까? 아니야, 그러면 나대신 다른 친구가 분필가루를 뒤집어 쓸 텐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의 주위를 맴돌았다.
선생님의 손끝에서 계속 피어오르는 하얀 가루에 신경을 쓰다 보니 공부도 제대로 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몸에 나쁜 가루가 너무 많이 날려 학생들과 선생님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데 왜 굳이 분필을 쓰는 것일까? 가루가 날리지 않는 분필은 없나? 이 나쁜 점들을 고칠 생각은 왜 안하는 것일까?’
새로운 의문들이 자꾸만 솟아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나는 칠판과 지우개, 분필을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칠판을 지울 때 분필가루가 가장 많이 피어오르는구나. 그렇다면 칠판지우개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해 보면 되겠구나!’
지우개가 칠판 글씨들을 마구 집어 삼키는 광경을 떠 올리며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바로 그거야. 분필가루를 흡수하는 칠판지우개! 칠판을 지우면서 곧바로 가루를 몽땅 집어 삼키면 가루가 피어나지 않겠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얘, 정순아! 수업 끝났다. 집에 안 갈래?”
“응? 으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넋 놓고 하는 거니? 얼이 나간 것 같다. 얘!”
“그랬어? 아니야. 어서 집에 가자.”
교문을 나서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가루를 집어 삼키는 칠판지우개에 대한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다 말고, 나를 보며 미소했다.
“응, 정순이 오는 구나. 어서 오너라. 이제 다 됐으니 곧 저녁 먹자.”
“엄마, 배고프지 않아요. 하시던 일마저 하세요.”
“그래? 기운이 없어 보여서 배고픈 줄 알았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라.”
다시 진공청소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집안의 먼지를 먹기 시작했다.
‘그래, 가루를 흡수하려면 어떤 기구가 필요할거야... 진공청소기! 그렇지만 작고 값싼 것이 있을 텐데.’
공포의 백색 가루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머리를 쥐어짰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치 이! 발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군. 머리 속이 잠잠하니.’
그리고 또 하루가 저물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백색 분필가루를 뒤집어쓴 세균 같은 것들이 뒤쫓아 오는 느낌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다간 정말 병이 나겠어. 반드시 무슨 수를 내야지.’
“정순아, 웬 늦잠이냐? 학교에 늦을라. 어서 일어나!”
전기면도기로 턱수염을 밀며 나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맞아! 아버지께서 수염을 깎으면 수염가루가 전부 안으로 빨려 들어갔었어. 그 원리를 이용하면 되겠구나!’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면 지우개 속에 아버지의 면도기에 들어있는 것 같은 프로펠러를 설치하고, 작은 가루 주머니를 설치하면 되겠지.’
분필 가루가 모두 지우개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작은 가루 주머니에 모이는 광경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생각만 해도 가슴 속이 상쾌하게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이 나쁜 분필 가루들아, 덤빌 테면 덤벼봐라! 나도 이젠 너희들 쯤 겁내지 않게 되었단 말이다.’
나는 주먹을 굳게 쥐어흔들었다.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분필가루야, 가라!”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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