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로 움직이는 고추 모종삽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고추의 고장으로 소문이 나 있다.
빨갛게 여문 고추는 맵기도 하지만 맛이 좋아서 김장철만 되면 시장은 온통 고추로 철철 넘친다.
우리 집에서도 해년마다 고추를 심어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래서 올해도 고추를 심어야 하는데 고추를 심을 때가 되면 집안에서는 걱정이 앞선다.
벌써 몇 년 전부터 되풀이 되어온 일이다.
“고추 심을 때가 되니 심란해지는구려.”
“글쎄 말이에요. 올해는 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빠 엄마께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벌써부터 한숨이 서려있다.
예전에는 고추 모를 비닐하우스에서 가꾸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밭에 직접 심으면 되었다.
그런데 비닐이 나온 후로는 수확을 높이기 위하여, 고추 심을 둑을 높게 만들어 구멍을 일정하게 파고, 고추 모종을 심고 나서 비닐을 씌워 자라게 한다.
이 방법은 재래식 보다 한 달이나 일찍 심고 가꾸기 때문에 고추를 일찍 딸 수 있고, 수확을 많이 하여 수입이 훨씬 높다.
그런데 문제는 무너지지 않는 모종 심을 구멍을 파야하는데, 호미나 모종삽으로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수 백 개의 구멍을 쪼그리고 앉아서 일일이 손으로 파다 보면,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느끼게 된다.
“아이고, 고추 농사만 안 지으면 허리가 편하겠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밤이면 끙끙 앓으시며 무척 괴로워 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종 심는 구멍을 쉽게 팔 수 있는 모종삽을 만들어 보자.’
그래서 처음에는 연탄집게와 같이 만들어 연탄을 집는 부분에 모종삽을 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에 두개를 잘라 만들어 보았다.
‘제법 편리하군.’
그러나 양손으로 눌러 땅에 삽을 박고 양쪽으로 벌려 들어올린 다음 흙을 쏟아 내려니 처음 몇 번은 잘 되었으나 일정한 간격으로 오므리고, 펴기가 불편하였다.
“지현아, 이걸 봐라.”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내가 만든 모종삽을 보시고는 시장에서 담배를 심는데 쓰이는 모종삽을 구해 오셨다.
“어? 그런 삽이 있었어요? 제가 정보에 어두웠군요.”
담배 모종삽은 내가 만든 것보다 자루가 굵고, 손잡이가 삽 모양이어서 훨씬 편리하였다. 그런데 그 것은 구멍이 너무 크고, 구멍을 팔 때마다 양 삽자루를 오므렸다 폈다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은 모두 완전한 것으로 믿었는데 이런 결점이 있었구나.’
그래서 구조를 잘 살펴보았더니, 삽의 양쪽 귀에서 연결하여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오므리게 되어 있었다.
‘음, 이 구멍을 한쪽에서만 약간 안쪽으로 뚫어주면 될 것 같군.’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사용해보니 구멍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자동으로 흙을 털고 오므라드는 장치가 문제였는데, 양 삽자루를 서로 당기도록 하는 데는 스프링이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자전거 통학을 하면서 자전거의 구조를 익혀두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세울 때 사용하는 받침의 스프링에서 힌트를 얻어 양쪽의 삽자루 사이에 오므라드는 스프링을 걸어 보았다.
완성된 삽에 힘을 주어 땅에 박고, 삽자루를 양쪽으로 벌려 흙을 모아 꺼낸 다음 한 손에 힘을 주었더니 ‘탁’하면서 손잡이가 서로 마주치며 삽날은 벌이고 흙은 저절로 쏟아져 땅에 떨어졌다.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아빠, 이 것을 좀 보세요.”
아버지께 자랑을 하며 보여드렸더니 아주 편하겠다며 단번에 백여 개의 구멍을 파시고는 ‘팔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렇지! 팔로만 누르니 힘이 들지. 다리를 쓰면 어떨까?’
모종삽을 잘 살펴보니 옆에 오토바이의 발판처럼 힘을 가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붙이면 편리할 것 같았다.
철공소에 가서 용접을 하여 밤에 혼자서 시험을 해 보았더니, 손과 발을 사용하므로 참으로 편했다.
이제는 완성되었다고 혼자서 흐뭇해하며, 밭에 나온 어머니께 모종삽을 보여 드렸다. 몇 개의 구멍을 파고는 별로 탐탁스럽지 않은 듯 말씀하셨다.
“얘야, 나에게는 너무 짧아서 힘을 쓸 수가 없어 오히려 불편하다.”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단점을 꼬집혀 화가 났지만, 발명을 하려면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궁리를 했다.
“어떻게 하면 삽자루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을까?”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다.
“형, 방에 있던 옷걸이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데.”
“뭐야? 그래, 바로 그거다.”
얼마 전에 옷을 너무나 많이 걸었다가 넘어져 부러진 옷걸이를 생각해내고 즉시 달려가 보니, 조절나사도 붙어있고 파이프의 직경 또한 삽자루와 꼭 맞았다.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고 보니, 손잡이의 각도까지 조절할 수 있어 매우 편한 자세로 작업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지적에 감사드리며, 다시 사용해 보시라고 드렸다.
“그것 참, 신기하게 편하구나.”
부모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니 동네 어른들께 자랑하여, 동네 사람들이 서로 우리 집 모종삽을 빌려가려고 야단이 났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