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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의 비상 신호등
지난 5월 어느 날, 나는 아빠 엄마와 함께 시골의 친척집에 놀러갔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오랜만에 보는 시골 풍경은 참으로 멋있었고,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분도 상쾌했다.
“여보, 저 산의 색깔을 좀 보세요. 모두 연두 빛이에요.”
“음. 그렇군.”
즐거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시는 엄마와, 흡족해 하시는 아빠, 그리고 덩달아서 기쁨을 느끼는 나의 작은 가슴으로 행복이 가득차는 듯 했다.
“아빠, 염소가 있어요. 음매에∼”
동네 입구를 들어서자 농촌의 향기가 코를 찌르고, 야트막한 언덕바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의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우리 광훈이도 엄청 좋은 모양이구나. 이제 자주 와야겠다.”
“정말 화창한 봄이에요. 모든 만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아요. 막 힘이 솟는 것 같아요.”
“그래,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워서 더 그렇게 느껴질 거야.”
논을 갈고, 밭을 다듬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모두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어서 오너라. 광훈이도 많이 컸구나. 이젠 제법 의젓해졌어!”
우리를 반겨 주시는 친척들의 정다운 목소리와, 후한 인심이 새삼 시골을 실감하게 했다.
“아빠, 앵두 맛이 너무나 좋았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앞 다투어 즐거웠던 시간들을 이야기 했다.
“여보, 우리도 나이 들면 시골에 와서 살아요. 공기가 너무 좋았어요. 털 많은 복실이와 병아리들이 너무나 귀여웠어요. 눈에 선해요. 뒤뚱뒤뚱 궁둥이를 흔들어대던 오리도...”
“하하하. 시골은 다 그런 거지 뭐, 어쨌든 형님과 형수님은 언제 봐도 웃는 얼굴이신데, 많이 늙으셨어.”
절반쯤 왔을 때,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둠이 가로수의 연두 빛 가지도, 넓은 들과, 아지랑이도 모두 삼켜버렸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집을 향하던 아빠가 손놀림을 이상하게 하며 핸들을 꺾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 차가 왜 이러지? 타이어가 나갔나?”
“여보, 왜 그러세요?”
엄마의 안색이 변하고, 나도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차가 고장 났나 봐.”
“그럼 어서 한 쪽으로 대세요.”
“그래야겠소. 에이 참! 빨리 가야 될 텐데.”
갓길에 차를 세운 아빠는 차의 바퀴를 점검하고, 범퍼를 열었다.
“당신이 이 손전등을 비추어서, 지나가는 차가 알아볼 수 있게 해요.”
고속도로 위라, 지나가는 차들이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금방이라도 부딪칠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우와, 너무 아슬아슬 해요.”
“광훈이는 아빠를 도와줘야겠다. 타이어를 교환해야 하겠어.”
나는 마음을 졸이면서 아빠를 도왔고, 간신히 타이어를 바꿔 낀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날 밤의 아슬아슬했던 기억은 좀체 잊혀지지 않았다.
‘고장 난 차와 충돌하여 사고가 나는 일도 많던데, 손전등으로는 너무 약해. 비상시에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후, 나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광훈아, 갑자기 무슨 고민거리가 생겼니?”
심각하고 진지한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이렇게 걱정하셨다.
“아니에요. 아무 것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하자 친구들 또한 그런 경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들 했다.
‘그래, 무언가 유용한 것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만들지?’
속으로만 끙끙 앓는 사이 자꾸만 시간이 흐르고, 속절없이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재미있게 놀다가,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네거리 입구에서 경찰 아저씨가 경찰봉을 들고, 필요할 때마다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 바로 저거다. 저 원리를 이용하여 비상시 안전 신호등을 만들면 되겠구나!’
나는 깜빡이는 불빛처럼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에 스스로도 놀라며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생각한 것을 설계도로 그렸다.
먼저 사각형 판에 구멍을 뚫은 후, 둥그런 볼 속에 깜빡이등을 설치하고 전선을 받침판 위의 전지에 연결하는 것이다. 전등이 깜빡이면 먼 곳에서도 잘 보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설계도를 아빠께 보여드렸더니, 매우 대견해 하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광훈이가 이런 생각을 다 했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깜빡이등의 볼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회전하면 야간에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띌 것 같은데... 볼베어링을 구해다 밑판에 붙이면 좋겠다.”
이튿날, 나는 베어링을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베어링의 크기가 매우 다양한데 놀랐다. 주인아저씨를 통해 베어링에 관한 많은 지식을 쌓은 후 여러 종류의 베어링을 사왔다.
베어링을 고무판 위에 놓고, 사인펜으로 2개의 원을 그려 칼로 오려냈다.
밤에도 잘 보이도로 네온사인의 깜빡거림을 이용한 발명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가슴이 흐뭇했다.
“야호! 드디어 해냈다.”
제품이 완성되자, 그동안의 수고를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 기뻤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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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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