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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머달린 신호등
유난히 무덥고 지루한 어느 여름날, 나는 엄마를 따라 슈퍼마켓에 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나와서 큰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앞서 건넌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태영아, 위험 해!”
녹색 신호등이라 안심을 하고 건너고 있었는데, 통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승용차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못 보았기 때문에 승용차가 다가서는 줄 모르고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당황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운전자가 차를 멈추었기 때문에, 나는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놀라서 뛰고 있는 내 가슴을 추스르느라 한참이나 심호흡을 했다.
‘후유... 놀랐네.’
놀란 가슴은 겨우 진정이 되었지만, 은근히 화가 났다.
‘신호가 바뀌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길을 건너는 사람이나, 운전을 하는 사람이나 서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선 신호가 바뀌는 시간을 재어 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일요일 오후의 한가한 시간에 다시 네거리로 나갔다.
자동차들은 여전히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찌 찍 소리를 내거나, 혹은 신호가 바뀌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동차들로 인하여 뒤차들이 신호음을 울리는 일 등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재어 보았다.
‘58...59...60.’
보행자 신호등인 녹색 신호등은 60초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이렇게 정확하게 신호가 바뀌는데도 사람들이 그것을 미리 예측할 수 없어서 사고를 낸다는 것은 말도 안돼. 뭔가 좋은 수가 있을 거야.”
나는 안타까운 생각으로 혼자서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보행자에게나 운전자에게 신호가 바뀌는 것을 미리 알릴 수만 있다면, 운전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의 아버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신호가 바뀐다는 것을 알릴까?’
곰곰 생각하며, 평소 모아두었던 잡동사니들을 있는 대로 꺼내놓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묘안은 좀 체로 떠오르지 않았다.
“얘, 태영아! 빨리 일어나. 학교에 늦을라.”
“응... 으음, 엄마, 지금 몇 시에요?”
“아침 일곱 시다.”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그렇다니까. 네가 켜놓은 자명종 시계소리에 온 집안 식구가 다 깼는데 정작 너는 여태껏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니?”
“자명종이 울렸어요?”
“그래. 에고 녀석! 새벽 4시부터 식구들을 다 깨웠다.”
그제 서야 태영이는 머리맡의 자명종을 바라보았다. 시계의 종이 4시에 맞추어져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이 있었는데... 저는 그 소리를 못 들었어요.”
“어제 종일 쏘다녀서 피곤했나 보다. 다음부터는 못 일어날 것 같으면 아예 자명종을 맞추지 말고 엄마한테 부탁해라. 그럼 내가 깨워줄게.”
“네, 알았어요. 엄마.”
아직도 덜 깬 잠 탓에 부시한 눈으로 시계를 어루만지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 바로 그거야!’
그리고 나는 서둘러서 등교할 차비를 했다.
이윽고 수업을 마친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물상 같은 내 방안의 잡동사니들을 뒤적여 타이머로 쓸만한 시계를 찾아냈다.
‘자, 우선 이 깜박이 등을 신호등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타이머를 달자. 그런 다음...’
나는 설계도를 그려가며, 나의 구상을 실현시켜 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호등에 부착한 타이머가 어떻게 점등을 알릴 수 있게 할까?’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조립하여 실험을 해보았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간을 씨름한 끝에 나는 드디어 개량 신호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자, 여러분! 마술의 신호등을 보시겠습니다. 짜 안.”
마치 마술사처럼 검은 보자기를 들추자 모형 신호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가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이윽고 60초가 지났을 때.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
나의 말과 동시에 식구들의 박수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와, 훌륭하다. 태영아!”
나의 모형 신호등은 60초 간격으로 양쪽에 역순 타이머를 부착하여 보행자는 물론, 측면의 운전자도 볼 수 있게 고안된 것이다.
“대단한 아이디어야! 교차로 진입에 앞서 신호가 바뀌게 될 때까지의 시간을 미리 예측할 수가 있으니 자동차의 급정거를 막을 수 있고, 그러면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차량의 연쇄 충돌 사고도 막을 수 있겠어.”
칭찬과 함께 나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시는 아버지의 눈으로 무엇인가 불빛처럼 반짝거리는 것이 언뜻 스쳐갔다.
나는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디선가 불어 들어온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럽게 방안을 맴돌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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