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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형 감자 깎기
우리 엄마는 똑같은 딸인데도 언니를 더 예뻐하는 것 같다.
“소정아, 언니는 중학생이니까 공부하느라 놀 수도 없잖니. 그러니까 잘 먹어야 하고, 옆에서 떠들면 안돼.”
맛있는 것, 좋은 것은 언니부터 주거나, 조금만 큰소리로 떠들어도 나를 나무라신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언니가 밉다.
아침에만 해도 그렇다.
“소정아, 소정아! 이리 좀 와봐!”
바쁜 나를 급하게 불러댔다.
“에이 참, 난 지금 숙제해야 돼요.”
나의 시큰둥한 대답에 엄마는 더욱 재촉했다.
“잠시면 돼. 빨리 좀 와!”
나는 어제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느라 못다 한 숙제 장을 덮어두고, 주방으로 갔다. 엄마 또한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면서 나를 부른다는 것을 짐작해서다.
“왜 그러세요? 엄마!”
“소영아, 이 감자 몇 개만 깎아 다오. 언니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래.”
“엄마는 맨 날 언니밖에 몰라... 언니 반찬 만드는데 왜 저를 불러요? 언니를 시켜야지!”
화가 난 나는 짜증을 내며 투정을 했지만, 엄마는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 수없이 엄마가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아주는 감자를 받아 들었다.
“치 이, 이리 주세요.”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겨먹은 감자들이 괜히 미웠다. 그 감자들 중에서 가장 크고 예쁜 것 하나를 골라 왼손으로 꽉 움켜쥐고, 오른손에 든 안전 칼을 잡아 당겨 감자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감자껍질을 벗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자는 사과나, 바나나처럼 매끈하게 생기지 않고 울퉁불퉁하거나 요철부분이 많아, 크고 잘생긴 것들을 깎을 때는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못생긴 감자를 깎을 때는 너무 힘이 들고, 손이 아프다 못해 저리기까지 했다.
‘얘들은 대체 왜 이렇게 못생겼지? 아무도 봐주지 않는 흙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제멋대로 생겼을까? 바보! 결국은 사람들 앞에 온몸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걸 모르다니.’
힘들지만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 두어 버릴 수도 없어서, 애꿎은 감자의 모양새만 트집을 잡으며 감자를 깎던 나는 일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감자를 쉽게 깎고, 또 얇게 깎아 낼 수 있을까? 움푹 들어간 부분을 쉽게 손질할 방법은 없을까?’
멍하니 앉아있는 내가 측은했던지, 엄마가 다가서며 말을 걸어왔다.
“손이 아프지?”
그제 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감자를 집어 들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엄마, 이제 다 됐어요.”
가까스로 감자는 다 깎을 수 있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그 생각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소정아, 수고했다. 너도 어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지.”
엄마의 말에 대꾸하는 것도 잊고,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도 내내 그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하면 감자를 쉽게 깎을 수 있지? 내가 주방에서 쓰던 감자 깎기 칼은 한 일(-)자 모양으로 칼날이 붙어 있었는데, 감자나 당근의 표면은 둥그렇게 생겼거나 울퉁불퉁한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궁리를 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는 내 앞에 눈에 익은 지팡이 하나가 신발장 옆으로 얌전히 기대 서 있었다.
“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부리나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뛰어들며 소리를 지르는 내 머리 속으로 언뜻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바로 저거다.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
나는 평소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사용하여 구석진 곳에 떨어뜨린 물건을 집어 올리거나, 여러모로 사용하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평소처럼 덜렁거리지 않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내 모습이 의외라는 듯 할아버지와, 같이 있던 엄마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 그래! 우리 소정이가 이젠 제법 어른스러워 졌구나.”
그러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얼른 내방으로 들어갈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소정아! 이 바나나랑 과자, 안 먹고 가니?”
“네, 할아버지! 숙제가 많아서요.”
방으로 돌아온 나는 종이를 꺼내놓고 내가 구상하는 감자 깎기 칼의 도면을 그렸다. 칼날은 약간 굽어진 반달 모양으로 하여 채소의 굽은 표면이 얇게 깎일 수 있도록 하고, 움푹하게 패인 부분을 깎아낼 수 있는 지팡이 손잡이형의 칼날을 크고, 작은 것 두 개를 양 옆에 달아, 큰 홈과 작은 홈 등 크기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아니, 우리 소정이가 이런 생각을 다 했단 말이야?”
아빠와 엄마는 내가 만든 도면을 보고, 개량 형 감자 깎기를 만드는 일을 도와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자의 살을 훨씬 덜 버리게 되니 환경을 오염시키는 음식물 찌꺼기도 훨씬 줄어들겠어.”
아빠의 말에 엄마가 던지는 한마디.
“소정이 덕분에 언니 도시락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또 언니에요? 맨 날 언니, 언니!”
“허허허, 소정이도 이제부터는 발명가야. 여보! 소정이를 함부로 대하면 큰코다친다고. 알았지?”
“호호호, 알았어요. 학생 발명가님!”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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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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