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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 달린 화분
우리 집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바닷물은 파랗게 변하고, 철썩이는 파도 위를 갈매기들이 춤을 추며 날아 장관을 이룬다.
나는 가끔 집 앞 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해를 보낼 때도 있다.
“동관아, 아빠 출장 다녀오마.”
사흘 전에 회사 일로 출장을 떠나셨던 아빠가 돌아오시는 날이라,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문밖을 서성이며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출장을 가실 때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선물을 꼭 사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모형 비행기, 로봇, 덤프트럭 등도 모두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사온 물건들이다.
“동관아, 아빠 오시려면 아직 멀었다. 들어와서 밥 먹어야지.”
엄마의 재촉이 벌써 여러 번 계속되었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설레어 밥을 먹고 싶은 생각마저 없었다.
“알았어요. 엄마! 이따 먹을게요.”
그렇게 점심도 거른 채 해는 저물고 주위에는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그때 007가방 하나를 들고 휘적휘적 대문을 들어서는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관아!”
“앗, 아빠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나는 가방 안에 들어있을 선물을 기대하며, 얼른 아빠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엄마는?”
“안에 계세요. 엄마, 아빠 오셨어요.”
“응, 나간다.”
엄마는 옷매무새를 만지며 아빠를 맞이했다.
“가신 일은 잘 되었어요?”
아빠를 뒤따르며 엄마가 의례적으로 묻고, 나는 아빠의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동관아, 너 또 물 안 주었구나!”
‘아차!’
나는 우리 집에서 매일 화분에 물주기와, 마당 쓸기를 맡고 있었는데 날이 더워 매일 바닷가에 나가, 수영을 즐기느라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깜박 잊고 화분에 물주는 일을 거른 것이다.
미처 변명도 하기 전에 아빠의 호된 꾸중이 이어졌다.
“이것 봐, 잎이 다 말랐잖아! 이 녀석아.”
“아, 아... 아빠, 죄송해요. 깜빡 했어요. 지금 줄게요.”
“저 녀석이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자기 할 일을 잊으면 어떡해!”
나는 급히 서둘러서 화분에 물을 주었지만, 아빠한테 야단맞은 뒤의 불쾌한 기분은 밤새 가시지 않았다.
‘에이, 기분 잡쳤네.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분은 없을까?’
아빠는 잊지 않고 선물로 전자 오락기를 사 오셨지만, 송구스런 마음에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동관아, 혼나서 마음이 아프겠지만 사내란 자기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알았지?”
아빠의 훈계말씀에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 나는 그때부터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분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예 수도꼭지에 화분을 연결할 수도 없고,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숙제를 하기 위해 민속박물관에 가는 형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야, 웅장한데!”
커다란 건물 앞에 서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형이 말했다.
“야, 동관아! 번지수가 틀렸다. 이 쪽이야, 이쪽.”
그러면서 앞장을 서는 형을 따라 들어간 곳은 낡고, 이상한 물건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뭐야, 박물관이라고 해서 따라왔더니,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물건들만 잔뜩 쌓여 있잖아. 아이 시시해.’
속으로 생각하며, 구경하는 내 앞에서 갑자기 형은 걸음을 멈춰 섰다.
“야! 이거다.”
“형, 뭐 말이야?”
“이거, 호롱불이라고... 옛날에는 전깃불 대신 이것을 켜놓고 공부했단다.”
그러면서 형은 가운데 있는 심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창호지 같이 종이로 만든 심지가 석유를 빨아올려서 계속 불이 켜있도록 한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렇다면 화분 안에 심지를 넣어두면 물을 계속 빨아올릴까?”
“무슨 소리야? 화분 안에 심지라니?”
나는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형에게 말했다.
“알았어. 나중에 설명해줄게. 빨리 집에 가. 형!”
집에 돌아온 나는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화분을 만들기 위해, 흙 화분 바닥에 있는 물 빠짐 구멍에 헌 수건으로 굵은 심지를 만들어 끼워 화분 흙 속에 나무뿌리처럼 펼쳐 묻고, 밖에 나온 심지는 물통에 담아 놓았다.
이 화분에 금잔화를 심어 보름동안 관찰해 보았다. 과연 내 생각대로 물이 화분 흙 속에 올라와 흙을 적셔 주고 있었다. 성공이었다.
그런데 화분에 맞는 수조를 구하기가 어려워 페트병을 이용하기로 했다.
학교나 동네 쓰레기 분리수거함에는 언제나 쓸모 있는 페트병이 많이 있었다.
흙 화분 대신 페트병을 이용하여 심지달린, 편리한 화분을 만들게 되었다.
“동관아, 이 것이 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란 말이지?”
“네, 아빠!”
“허허허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생각도 발명의 동기가 되는구나.”
“편리함의 추구지요.”
“녀석, 어쨌든 축하한다. 그렇지만 화분에 물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아이쿠, 아빠.”
멀리 바다 위를 갈매기들이 흐느적거리며 날고 있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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