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량 장독 뚜껑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소리로 인사하며 집안에 들어섰다. 그러나 웬일인지 인기척도 없이 집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상하다. 엄마가 어디 가셨나? 문은 열려있는데.”
나는 의아해 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봤다. 그러나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막 걷은 듯한 빨래만 널려있었다.
‘엄마가 비 때문에 날 마중하러 나가셨다가 나랑 길이 엇갈렸나 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해보곤 마음 편하게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안되겠다. 이모에게라도 연락을 해봐야지.’
나는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딩동!”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차임벨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나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
“어머나 세상에!!”
나는 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하며 놀랐다. 엄마의 다리에 하얀 깁스가 감겨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한쪽 팔은 이모에게 의지하고 한쪽은 목발을 집어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서있었다.
“영주야 뭐하니? 얼른 엄마 모시고 들어가지 않고?”
이모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엄마를 부축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모에게 다그쳐 물었다.
“글쎄다. 비가 갑자기 오기에 장독의 뚜껑을 닫으려고 엄마가 급히 나가셨지.”
“그럼 장독대에서 굴렀다는 말이야?”
“그런 것 같아. 비명소리가 나기에 나가 보니 너희 엄마가 장독대 밑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앉아있지 않겠니?”
“내가 한번은 이런 사고가 날 줄 알았어.”
나는 너무나 속이 상해 혀를 찼다. 사실 우리 집 장독대는 너무 높이 경사가 져있어서 급히 오르내리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모, 장독대 뚜껑은 그렇게 꼭 열어 두어야 해? 먼지도 들어가고 좋지 않던데.”
“고추장은 햇볕을 많이 쬐어야 하는걸. 우리 집 고추장 맛이 동네방네 소문나 있는 것은 다 그 덕분이라고.”
“정말?”
고추장 맛의 비결이 햇볕에 있었다니, 그 사실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는, 좋아하는 TV 프로를 보지도 않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이모에게서 들은 고추장의 비밀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흠, 햇볕을 쬐면 살균작용이 일어나고⋯ 옳아 염분도 조절이 되는구나.”
커다란 백과사전을 찾아 읽으면서, 나는 여러 사항을 메모해나갔다.
‘햇볕은 통과 하면서도 물이나 먼지들이 들어가지 않게 할 순 없을까?’
만약 그런 특성을 가진 장독을 만든다면 비가와도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
‘햇볕이 통과하는 것이라⋯ 유리같이 투명한 것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이에 이르자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같이 여겨졌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정말 금 새 문제가 풀리네.’
난 몹시 기뻐하며 커다란 도화지에다 새로운 장독 뚜껑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리도 좋지만 무겁고 깨지기 쉬운데⋯ 그래! 가볍고 튼튼한 아크릴 판이 좋겠다.’
나는 내가 아끼는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서 돈을 꺼내 보았다. 잔돈까지 합쳐서 모두 만이천원이었다.
“그래 이정도면 되겠다.”
나는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조용히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아크릴 모형 제작소를 향해 냅다 뛰었다.
“자 네 말대로 모두 끝났다. 그런데 이것을 어디다 쓰려는 거니?”
아크릴 가게 주인아저씨는 커다란 아크릴 뚜껑을 나에게 안겨주며 다정히 물었다.
“헤헤⋯ 사실은요 장독 뚜껑으로 쓰려고요.”
나는 멋 적은 웃음을 띠며 아저씨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옳아 그랬구나. 아주 착한 학생이네! 네 아이디어를 아저씨도 사용하게 해줄래? 우리 집에도 이런 것이 필요하거든. 그러면 내가 이것의 값은 받지 않으마.”
나는 너무나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나의 아이디어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하게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발걸음이 더욱 가벼웠다.
“얼른 가서 엄마에게 보여야지. 엄마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