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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이용한 지구본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고민이 있기 때문일까? 바닷가로 가는 즐거운 길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짝 잃은 갈매기마냥 처량하게 창밖만 내다보았다.
지구본, 그것이 문제였다. 이 여름 내내 나를 고민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은 바로 그 둥그런 지구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랑 꼭 닮은 공. 사회시간마다 교탁위에 떡하니 자릴 잡고서 항상 거만을 떨던 그 둥그런 지구본. 그것이 나의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된 것은 여름방학이 막 시작 되려한 그 무렵이었다.
나와 영창이는 운명의 장난으로 과학실을 청소하게 되었다. 교무실이나 양호실을 청소했으면 좋았으련만. 선생님도 안 계신 과학실에서 나와 영창이는 간단하게 칼싸움을 벌였고, 그것은 마침내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 지구본을 망가뜨렸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용돈을 대충 모으면 금 새 지구본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었다. 지구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선생님께 이 사실을 자수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방학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개학이 되면 이 사실은 들통이 날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이니, 내가 바다를 간들 즐겁겠는가? 해를 봐도 지구본이 떠오르고 수박을 봐도 내가 찌그러뜨린 지구본이 생각 날 지경이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구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들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한여름을 망치다니⋯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착실히 청소만 하는 건데. 괜히 칼싸움 같은 것을 해서 이게 뭐람!’
너무나 비참한 기분이었다.
“이야! 바다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민희가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눈앞에는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바다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커다랗게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비치파라솔 아래에 둘러 앉아 수박을 쪼개 먹는 사람들, 커다란 튜브에 의지해서 물장구를 치는 아줌마들⋯ 정말 모두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이 넓은 해변에서 고민을 짊어진 가엾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했다.
나는 파라솔 밑에 우두커니 앉아 쓸쓸하게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지구본을 좀더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하나? 어차피 학교에서 쓰다보면 떨어뜨리거나 부딪히는 일이 많을 텐데.’
나는 작은 돌을 주워 힘껏 던졌다. 괜스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솔직히 지구본은 불편한 점이 많다고. 너무 커서 옮기기에도 불편하고, 보관하기도 힘들잖아! 좀 편하게 못 만드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억울했다. 좀더 편리하게 지구본을 만들었더라면 그런 불상사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혼자 씩씩거리며 모래를 흩뿌렸다.
“오빠. 아까부터 이상하다. 고릴라처럼 콧김을 뿜어내고 있네.”
민희는 어느새 고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별 것 아냐! 넌 가서 놀기나 해.”
나는 퉁명스럽게 계속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지 말고 우리 공놀이나 하자!”
민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비치 볼을 내 앞으로 쑥 내밀었다. 민희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좀 누그러졌다.
“그래.”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비치 볼을 받아 들었다. 바다에까지 와서 계속 울상만 짓고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벼운 비치 볼을 들어 저만치 떨어져 있는 민희에게로 던졌다. 그러자 공은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지구본을 닮아있었다.
“맞아! 바로 그거야.”
나는 되돌아 날아오는 공을 쳐다보며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비치 볼처럼 바람을 넣어 부풀리는 지구본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바람을 빼면 작게 줄어들어 운반하거나 보관하기 편하고, 바람을 넣으면 지구처럼 곧바로 둥그렇게 변하여 수업에 쓸 수 있는 것. 물론 떨어지거나 부딪혀도 깨질 염려는 전혀 없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의 것보다 가격이 싸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민희를 혼자 남겨두고 아빠에게로 뛰어갔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얼른 자랑하고 싶었다.
“오호⋯ 풍선을 이용한 지구본이라. 그래, 교재용으로는 적합 하겠구나.”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신 것이 분명했다. 난 때를 놓치지 않고 얼른 사실을 고백했다. 아빠가 기분이 좋으실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지구본을 깨뜨린 일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이 아이디어를 냈단 말이지?”
“네.”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초조한 순간이었다.
“그래 좋다. 네 발명의 연구비로 얼마간의 돈을 주지.”
아빠의 의미 있는 미소에, 나는 비로소 한숨을 놓았다. 드디어 나의 오랜 고민이 해결된 것이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로 나는 나의 여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확실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인간의 생활을 활력 있게 하는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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