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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잡이 스탠드
“야, 너 어제 그 TV프로그램 봤냐?”
“무슨 프로그램?”
“그거 있지 않아. 다른 나라 학교의 시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말이야.”
“아하, 나도 봤어. 굉장히 부럽더라.”
“나는 특히 그 과학시설이 정말 부럽더라. 모든 실험을 각자 해본다더라.”
보경이와 나는 흥분하여 열변을 토했다. 보경이는 세계적인 과학자를 꿈꾸는 당찬 아이이다. 나는 보경이가 꼭 꿈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 그만큼 보경이는 과학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자신만만하다. 얼마 전에는 중학생 오빠와 과학상식 겨루기를 해서 이긴 적도 있었다.
보경이는 꿈꾸는 듯한 눈을 하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렴풋이 보경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보경이는 분명히 그 머나먼 외국 학교의 과학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넓고 깨끗한 과학실, 테이블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갖가지 실험도구들, 많은 비커와 메스실린더, 알코올램프들이 보경이의 머리 속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듯 했다.
“나도 그런 실험실에서 마음껏 실험을 해보고 싶어.”
보경이는 여전히 꿈꾸는 듯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보경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우리나라는 학교시설이 좋지 않을까? 과학실은 어둡고 침침하고, 실험도구도 너무 부족하고, 그나마 실험실습을 하는 날도 거의 없잖아.’
나도 덩달아서 아쉽고 쓸쓸해졌다. 그런 내 기분을 알았는지 보경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지현아 왜 그렇게 우울해 하냐? 괜찮아. 우리나라도 좀 있으면 다른 나라처럼 학교시설이 좋아질 거야.”
보경이는 다시 평소 때처럼 발랄한 목소리로 경쾌하게 말했다.
“우리가 심각해져 있으면 뭘 하냐?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우리 집에 가서 비디오나 보자. 우리 오빠가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 빌려다놨어.”
보경이는 호들갑까지 떨며 팔을 휘저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기분이 저절로 밝아졌다.
“그래. 가자.”
우리는 팔짱을 끼고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힘차게 걸었다.
“나는 저 가수가 제일로 좋더라. 춤을 잘 추잖아.”
우리 둘은 TV앞에 앉아 연신 재잘거렸다.
“나는 멋있게 생겨서 좋아해!”
TV속의 가수는 보경이의 말대로 정말 춤을 잘 추었다. 무대를 토끼마냥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때로는 마이크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다.
나는 정신없이 그 가수의 몸짓을 따라 눈을 옮겼다.
“정말 굉장하다. 꼭 높이뛰기 선수처럼 뛴다.”
가수는 더 격렬하게 움직였고 나도 덩달아 흥이 나서 계속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러나 보경이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슬며시 보경이쪽을 바라보았다. 보경이는 TV를 볼 생각도 안하고 먼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럼 그렇지. 보경이가 그 많은 실험도구들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리 없지.’
나는 다시 마음이 우울해졌다. TV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가수가 아무리 높이 뛰고 소리를 질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유⋯ 보경이의 기분을 풀어줄만한 것이 없을까? 새로운 과학 서적이라도 한권 사와야 하나?’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좋은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때 마침 TV에서는 가수가 마이크를 가슴에 부여안고 노래하고 있었다.
‘참. 저 가수에게는 저 마이크가 소중한가 보지? 꼭 보경이가 시험관을 아끼는 것과 같구나.’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마이크나 시험관이나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가만, 저 마이크 대를 이용하면 멋진 생각이 나올 것 같은데.’
마이크를 마이크 대에 꽂는 모습이 내게는 시험관을 시험관집게에 꽂는 모습처럼 보였다.
“바로 저거야! 보경아!”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시험관을 가열할 때, 시험관 집게로 시험관을 집어서 알코올램프에 계속 대고 있어야하지?”
“당연하지⋯”
보경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껌벅였다.
“집게를 계속 들고 있으면 팔도 아프고 시간 낭비를 하는 셈이잖니. 그러니 저 마이크 대처럼 시험관 잡게 에도 버팀기둥을 만들어서 세울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니?”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그제 서야 보경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시험관 잡이 스탠드를 만들자는 거로구나!”
보경이는 들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정말 너는 내 친구야. 한국이 낳은 위대한 두 과학자! 바로 이 보경과 유 지현!”
미래의 과학자인 우리는 맘껏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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