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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가 붙은 튀김 저
“야! 우리 손으로 직접 저 도넛을 만들어 볼래?”
분식점 앞에서 말을 꺼낸 것은 준희였다. 그때, 우리는 주머니 돈을 싹싹 모아 도넛을 사먹기로 하고, 막 분식점에 들어가려 하던 참이었다.
“할 수 있을까?”
준희의 갑작스러운 제의에 우리는 발을 멈추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면 되지. 못할 것 있냐? 저번에 실과실습 시간에도 한번 했었잖아.”
준희의 의견에 경순이가 찬성을 하고 나섰다.
“그래? 그러면 해보자. 직접 만들면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거야.”
멈칫거리던 난숙이 마저 눈을 반짝이며 동의했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찬성하는 거야?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가 안 계셔서 맘대로 놀아도 돼!”
준희는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처럼 씩씩하게 앞장섰다.
엄마의 흉내를 내보는 것은 의외로 즐거웠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투르게 밀가루 반죽을 하거나, 여기저기에 감초처럼 참견을 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야야! 기름이 다 데워졌다. 얼른 반죽을 가져와!”
총 지휘를 맡은 준희가 가스렌지 앞에서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우리는 갖가지 모양으로 재미나게 만든 밀가루 반죽을 기름 솥에 넣으며, 침을 삼켰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아주 맛있는 도넛이 완성되리라 기대하면서⋯
“야야 안 익었겠다. 더 익혀라.”
“아니야. 벌써 저렇게 새까만걸! 빨리 꺼내.”
기름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넛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우리는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이윽고 다 튀겨진 도넛을 건져냈을 때, 우리의 얼굴은 실망으로 굳어졌다.
“어이구 이게 뭐야? 새카맣잖아?”
초코렛 빛이 감도는 못난 도넛을 바라보며, 경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겉은 이래도 속은 괜찮을 거야.”
나는 경순이를 달래었다. 겉이 탔으니 속은 잘 익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어머나 속은 하나도 안 익었어!”
제일 먼저 맛을 보겠다고 나섰던 난숙이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내질렀다.
“안 익었어? 겉은 이렇게 탔는데?”
경순이는 거의 울상이 되어 되물었다.
“그럴 수가!”
우리는 모두 허탈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애써 만든 것들을 하나도 못 먹는다 생각하니 억울하기만 했다.
“기름 온도가 너무 높았나봐. 온도를 재보았어야 했는데.”
한참 후에 준희가 풀이 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처 생각을 못했지 뭐.”
우리는 도넛을 망연히 들여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식점의 튀김 솥에는 온도계가 붙어 있더라. 하지만 집에서 쓰는 것에는 온도계가 없으니.”
“늘 상 튀김을 하는 것이 아니니 굳이 그런 게 필요 없는 거지 뭐!”
“하지만 필요하긴 하잖아.”
한참 만에 침묵을 깨고 난숙이가 불쑥 튀김 온도계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러자 우리는 갑자기 튀김 솥과 온도계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떠들기 시작했다. 이제 망쳐버린 도넛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거야. 자봐. 튀김을 할 때 온도계는 필수적이야. 그런데 솥에는 붙어있지 않잖아.”
“그럼 뭐야? 솥에다 온도계를 달자는 이야기야?”
준희의 말을 되받아 난숙이가 눈을 굴렸다.
“아니야! 그러면 솥을 활용할 수 없어. 우리 엄마의 경우 튀김 솥을 다른 용도로도 쓰거든.”
경순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래. 그런 점들을 모두 생각해보자고. 솥에 온도계를 붙이는 것은 좋지 않고⋯ 온도계만 따로 사용하자니 사용하기 불편하고 보관하기에도 좋지 않고.”
준희는 의견들을 정리하여 말하면서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준희의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온도계와 튀김이라!’
그러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 튀김을 할 때는 항상 튀김 저를 사용하지?”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봐! 온도계나 튀김 저나 모두 기다랗잖아. 그러니까 튀김 저에 온도계를 달면 어떨까? 그러면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히 온도계를 사용하게 되잖아.”
나는 튀김 저를 들어 보이며 열심히 설명했다.
“바로 그거야!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지?”
경순이가 손뼉을 치며 나섰다. 그러자 난숙이도 무릎을 탁 쳤다.
“맞았어! 그 방법이 있었구나!”
도넛으로 풀이 죽어있던 우리는 단번에 생기발랄해 졌다.
“야! 이거야 말로 인간승리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더니 실패가 정말 멋진 아이디어로 이어졌네!”
준희는 특유의 그 커다란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주: 튀김 저 → 튀김 젓가락)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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