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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리지 않는 헤드폰
“언니! 일본이 옛날에는 정말 못사는 나라였다면서?”
나는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언니를 붙들고 질문을 퍼부었다.
“옛날에 일본은 정말 미개한 나라였어요. 글자도 없고 사는 방식도 너무 원시적이어서 우리 민족은 그들을 보고 왜놈이라 부르면서 깔보았지요.”
“반대로 우리나라는 아주 발달된 나라였어요. 종교도 발달했고, 학문도 많이 발전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많은 좋은 점들을 일본인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도자기 굽는 법이나, 집 짓는 법 모두 우리가 가르쳐 준 것 이지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큰 나라라고 하며 존경했어요.”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해가 안 되는 말 뿐이었다.
책 읽는 법, 집 짓는 법 까지 모두 가르쳐 줄 정도로 우리나라가 잘 살았다면 왜 우리나라는 지금은 일본보다 못 살까? 그리고 반대로 우리보다 훨씬 원시적이었던 일본이 어떻게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 나라가 되었을까?
정말 알쏭달쏭한 문제였다.
“우리 민족이 더 뛰어난 민족이라면서 왜 일본보다 기술이 없어? 전자제품도 일제가 최고잖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니를 쳐다보았다. 순간 언니의 얼굴에는 난처한 빛이 지나갔다.
“글쎄. 아마도 우리 조상님들이 방심했었나 보지. 우리 조상들은 기술보다도 다른 곳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학문이나 철학 같은 것에...”
“반면에 일본은 작은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지. 예를 들면 라디오를 하나 보면 그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을 했던 거야.”
언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떤 점이 나쁜가? 어떤 점이 불편한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일본 사람들은,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나 발명가들은 모두 그런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곤 했데. 단 한 가지라도 나쁜 점이 발견되면 그걸 지나치지 않고 꼭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졌던 것이지⋯”
“아하!”
나는 언니의 설명에서 뭔가 느끼는 것이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끊임없이 질문하고 개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이 부자가 된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언니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정말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금방 일본을 앞설 수 있을 거야. 그 일은 너와 내가 해야지 안 그래?”
나는 언니의 마지막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던 나라의 기둥이라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바로 나와 친구들이 우리나라를 이끌 기둥이.
나는 내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불편한 점이 있어도 불평만하고 지나쳤던 일들이 떠올랐다.
‘길이 막힌다고 불평했고, TV가 잘 안나온다고 불평하고⋯ 헤드폰이 미끄러진다고 짜증내고...’
나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헤드폰에 관한 일은 나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이었다.
헤드폰을 머리에다 쓰고 음악을 들을 때면 매번 불편을 느끼는 점이 있었다. 헤드폰이 머리 위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꾸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는 헤드폰을 꼼꼼히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자처럼 만들까?’
나는 헬멧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실용적인 모양이 아닌 것 같았다.
‘모양은 바뀌지 않고, 불편한 점만 고칠 수는 없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언니가 불쑥 방으로 들어왔다.
“뭐하니?”
“으응, 뭘 좀 생각하고 있어...”
나는 말끝을 흐리며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언니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에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아마 줄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언니를 한참 쳐다보다가 손뼉을 딱 쳤다. 언니의 머리띠! 언니의 머리띠가 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해답의 열쇠였다.
“맞아! 언니, 머리띠에는 흘러내리지 않도록 작은 톱니들이 달려있지?”
“뭐?”
“머리띠 안쪽에 붙은 작은 톱니들이 머리카락 사이로 꽉 물리면서, 머리띠가 흘러내리지 않는 거잖아! 그러니 헤드폰에도 톱니를 달면⋯⋯”
언니는 한참만에야 내 말뜻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러면 헤드폰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구나...”
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너! 언니가 아까 한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두었구나.”
언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럼. 나는 이 나라의 기둥인데, 그냥 있을 수 있나! 분발해야지!”
나는 오른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이며 씩 웃었다. 가슴 깊이 뿌듯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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