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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깔때기
나는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누가 뭐라고 말을 시켜도 시큰둥하게 대답했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모든 일이 귀찮고 그저 집에만 가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맥없이 되어버린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바로 오늘이 교감선생님의 특별교실 시간이 들어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별교실 시간이란 다른 학교의 발명반이나 과학반과 비슷한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과학반이나 발명반이 원하는 학생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비해, 특별교실은 누구나 빠짐없이 참여해야하는 것이다. 이 특별교실은 교감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 약 한달에 한번정도 각반에 차례가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한달에 한번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고역 같은 시간이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각자 한달 동안 탐구한 사실들을 발표해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넌 이번에 뭘 했니?”
“화병에 꽃꽂이한 꽃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있는가 살펴봤어. 너는?”
“나는 가을철 별자리에 대해 살펴봤지...”
친구들은 제각기 자신의 탐구 과제를 자랑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탐구내용에 비해 나의 것은 너무나 형편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런 내용을 발표한다면, 나는 단번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거야.’
나는 누가 볼까봐 두려워하며 탐구 학습장을 책가방 깊숙이 감추었다.
‘따르릉 따르릉.’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전교에 울려 퍼졌다. 순간 나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특별교실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교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고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멋진 탐구를 해온 아이들은 자신감에 차서 방글방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같이 과제를 훌륭히 못한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차라리 탐구를 안했다고 해야지. 그편이 비웃음을 받는 것보다 나을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몸을 움츠렸다.
“이렇게 해서 가을철에 서울 상공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들을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평소에도 천체 망원경을 가졌다고 거드름을 피우던 경식이는 더욱더 자신감에 넘쳐 탐구 발표를 했다.
“그런데 그리이스 사람들이 붙였다는 별자리 이름이 제가 보기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큰곰자리의 경우 저는 아무리 봐도 큰곰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경식이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한바탕 웃어 젖혔다. 교감 선생님께서도 빙긋이 웃으셨다. 그 미소는 분명 흡족하시다는 뜻이었다.
‘흥! 천체 망원경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경식이의 웃는 얼굴과 선생님의 미소를 보니 왠지 심술이 났다. 그리고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커졌다.
“거기 빨간 옷 입은 학생. 나와서 발표해 봐요.”
교감선생님께서 돌연 나를 지목하셨다. 아마도 내가 경식이를 한참동안 바라보는 통에 눈에 띄게 된 것 같았다.
‘아아 어쩌지!’
나는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온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고, 선생님의 관심어린 눈길도 전해졌다. 나는 하는 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제... 제가 관찰한 것은 콜라병입니다.”
내가 첫마디를 꺼내자마자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웃었다.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콜라를 모두 먹은 뒤, 나는 그 플라스틱 병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어요.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거든요.”
나는 친구들의 웃음을 안 들으려 애쓰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결국 깨를 담을 때 쓸 깔때기를 만들었죠. 그런데 그것은 입구가 좁아 쓰기에 불편했어요. 그래서 그 입구의 폭을 늘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어요. 손으로 잡아 늘리기도 하고, 불로 달구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별로 좋지 않더군요. 그때 생각난 것이 타원의 원리였어요.”
“타원은 원보다 면적과 둘레가 넓다는 것에 착안해서 병의 입구를 사선으로 자르려 했지요. 병 안에다 모래를 넣어 기울이니까 아주 멋진 사선이 생겼죠. 그것의 각도를 50도에 맞추어 모래의 선에 따라 병을 잘라냈어요. 그랬더니 내 생각대로 병의 입구는 넓어졌어요. 약 9센티 정도가 늘어난 것이죠. 덕분에 쓸모 있는 깔때기가 생겨났어요.”
나는 순식간에 발표를 마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들려올 비난의 소리가 귀에 선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뒤이어 들린 것은 비난의 야유가 아니었다.
“정말 훌륭해요. 생활주변에서 관찰한 것이 정말 좋았어요.”
교감선생님께서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신 것이었다.
“이와 같이 과학이나 발명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거여요. 괜히 먼 곳만 바라보다가는 옆의 것을 잃기 쉽죠.”
나는 어리벙벙해져서 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자, 이 학생을 위해 박수를 쳐요!”
교감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어렴풋이 발명의 진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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