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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탕 비커
어디에선가 향긋한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무슨 냄새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아침부터 내내 바쁘게 움직이셨다. 아침나절에는 팥을 삶으시더니 좀 전에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계셨다.
“뭘까? 팥죽을 쑤신 걸까? 아니면 도넛?”
냄새는 점점 더 강렬하게 풍겨들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되겠다. 가서 직접 확인해야지...’
나는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스렌지 위에선 커다란 찜통이 하얀 김을 마구 내뿜고 있었다. 바로 그 찜통 안에서 그런 향긋한 냄새가 풍겨온 것이었다.
“아하! 엄마가 찐빵을 하시는 구나.”
엄마의 찐빵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온 동네를 뒤져도 우리 엄마처럼 맛있는 찐빵을 만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곧 맛보게 될 엄마의 찐빵을 기대하며 입맛을 다셨다.
“어떠니?”
“최고여요!”
나는 입안에 찐빵을 잔뜩 물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보였다.
“그래? 찜통에 얼마든지 있으니 실컷 먹어라.”
나와 아빠가 맛있게 먹자, 엄마는 흐뭇하신 것 같았다.
실컷 찐빵을 먹은 뒤에, 나는 내방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기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알코올을 중탕시켜서...”
나는 한참동안을 실험계획서 작성에 골몰하였다. 다음날은 자연실험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실험계획을 세워야했다.
실험제목과 실험목적, 실험과정들을 차례로 적어 내려갔다. 아주 간단한 실험이기는 하지만 계획이 잘못되면 결과가 아주 빗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가해야 했다.
“아이 배고파.”
나는 시장기를 느껴 고개를 들었다. 시계는 어느새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획서 작성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을 먹으려면 아직 세 네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때 마침 낮에 먹었던 찐빵이 생각났다.
‘그래! 찐빵을 먹으면 되겠다.’
찜통 안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찐빵들이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아가의 동그란 뺨처럼 부드럽고 복스러웠다.
“하하. 찜통은 엄마 같고 찐빵은 아기 같다!”
나는 싱겁게 웃으며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빵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여전히 맛이 있었다.
‘수증기를 이용해서 익혔기 때문인가? 찐빵은 다른 빵보다 더 부드러운 것 같아.’
나는 찜통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솥에 작은 철망... 정말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주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구나.’
전에는 찜통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살펴보니 점점 흥미가 생겨났다.
‘하찮은 것처럼 보여도 이 철망은 정말 대단한 역할을 하는 구나...’
나는 찜통에서 철망을 분리하여 살펴보았다. 그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쓰는 방법에 따라 이렇게 효과가 완전 달라지는 구나!”
나는 새삼스레 감탄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만약 내가 이것을 다시 다르게 이용한다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찜통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여태까지 골몰하고 있던 실험계획서도 함께 생각났다.
‘알코올을 중탕하도록 되어있지... 그런데 비커만을 사용하는 방법은 너무 불안정하단 말이야.’
중탕을 하려면 물이 들은 큰 비커 안에 다른 작은 비커를 넣어 가열해야 한다. 그러나 물이란 것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서 작은 비커가 따라서 자꾸 움직이는 것이다. 비커가 움직일 때는 마음도 덩달아서 뛰었다. 혹시나 작은 비커가 뒤집어질까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래! 찜통의 철망처럼 중탕 비커에도 고정 장치를 만들자...’
나는 중탕 비커의 걸개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우선 굵은 철사를 이용하여 비커의 주둥이가 걸릴 정도의 크기로 동그랗게 구부렸다. 그리고 원의 둘레에다 돌아가며 여러 개의 갈고리를 달았다. 그 갈고리를 바깥의 비커에 걸어 고정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철사를 구부리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쉽게 구부러지지 않았고, 모양도 비뚤비뚤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계획대로 중탕 비커는 요동하지 않고 점잖게 그대로 있었다.
“찜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다음날 과학실험시간에 나의 중탕 비커는 대인기였다. 선생님께서도 무척 놀라신 듯 했다.
“그래. 아이디어는 그렇게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란다.”
선생님은 나의 설명을 들으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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