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장고 보관 표
“아이고 더워라!”
불볕더위라는 말이 그대로 실감나는 날씨였다. 나는 한손에 부채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얼음물을 들고 숨을 헐떡였다.
“남들은 산으로 바다로 놀러 간다는데... 우리 집은 이게 뭐람? 선풍기도 고장 나서 부채질이나 해야 하고!”
나는 부채를 힘껏 휘둘렀다. 그러나 시원함도 잠깐.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이 황금 같은 여름방학을 나는 집안구석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름방학인데...”
허무하게 보내는 방학이 너무 안타까워 나는 푸념을 했다.
‘지난여름에는 할머니 댁에 가서 물장구를 치며 즐겁게 놀았었지...’
나의 머리 속에는 즐거웠던 지난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4학년 때,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지은 동시이며, 5학년 겨울방학 때 스키를 배워 즐겁게 놀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매해 방학마다 뜻 깊은 일을 했었구나. 스키도 배우고, 수영도 배우고, 고아원도 방문했었고...’
나는 흐뭇한 마음에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어쩐지 더위도 잠시 물러간 것만 같았다.
“할 수 없지... 올해는 아빠 건강도 안 좋고. 겨울방학이나 기대해야지.”
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설렘도 진정시켰다. 아빠가 아프셔서 입원하시는 바람에 우리 집은 너무나 어수선하게 변해 버렸다.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가시느라 무척 피곤해 보이셨다. 덕분에 누나도 고생이다. 매일 설거지니 청소니 궂은일에 매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이니 내가 감히 불평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밥이나 먹어야겠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부 시시 일어났다. 식욕이 없어서 아침부터 굶은 탓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저 콩나물 무침 조금과 김치, 우유만이 덩그러니 들어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군. 적당히 비벼 먹어야지.”
나는 밥을 비벼 먹을 요량으로 커다란 그릇을 찾아내었다. 밥과 고추장, 김치, 콩나물 무침을 적당히 넣어 비벼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숟가락가득 밥을 떠서 입속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웩, 퇴 퇴!”
나는 입안 가득이 들어있던 밥알을 모조리 뱉어 내었다.
“이런 쉬었잖아...”
입안에 남아있는 불쾌한 냄새에 비위가 상해서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뭐가 상했지?”
나는 밥그릇에다 코를 바짝 들이대고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어이구! 콩나물이 팍 쉬었잖아!”
나는 뒤로 주춤하며 코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에이!”
나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냉장고를 째려보았다. 냉장고에다 보관했으니 괜찮으리라 꽉 믿고 있었는데,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하긴, 선생님께서도 냉장고를 너무 믿으면 안 된다고 하셨지!’
방학식 때 상한음식을 주의하라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면 냉장고는 음식을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을까? 그 시기들을 정확히 알면 이렇게 음식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텐데.’
버려진 콩나물이 왠지 처량하게 보였다.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생선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을까? 채소는? 콩은?”
갑자기 궁금증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좀 전의 불쾌함도 모두 잊고 말았다.
“그래. 올 여름방학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며 보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돌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유쾌해졌다.
“보관 일을 알아보려면 무엇보다 실험이 제격이겠지? 식품을 실제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야!”
나는 실험의 방법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채소·곡류·육류 등으로 나누어서 각각 몇 가지 식품을 선정하고, 다시 이것들을 익힌 것과 날것으로 나누어 관찰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콩나물 무침, 생선, 단무지, 콩장, 장조림, 고기, 생선구이 등을 실험대상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것들을 냉장고에 넣어 관찰하였다.
이과정은 나만의 힘으로는 부족해서 누나와 엄마의 힘을 빌렸다. 누나는 재료구입에 도움을 주었고, 실험재료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대지 않도록 협력해주었다.
‘혁이의 위대한 실험중임! 관찰 물에 절대 손을 대지 말 것!’
약 한달 간 우리 집의 냉장고에는 이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실험결과 콩나물은 약 일주일정도 생선은 3일, 생선튀김은 5일, 고기는 3일, 장조림은 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조리한 음식일수록 보존기간이 길고 채소보다는 육류가 더 상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실험결과를 커다란 도표로 만들어 냉장고에다 부쳐 두었다. 엄마와 누나는 모두 칭찬이 대단했다.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 그것을 나는 이 냉장고 보관표로 멋지게 장식할 수 있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
왕연중의 발명동화
Designed by DOW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