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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 화분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하늘은 더욱 맑아지고, 나무들은 생생해 보였다. 날씨도 제법 따뜻해지고... 아마도 간밤에 내린 비는 봄을 재촉하는 봄비였었나 보다.
“봄비도 왔으니 우리도 화분갈이를 좀 할까? 꽃나무들이 집이 좁다고 아우성이구나.”
아빠도 날씨가 따뜻해짐을 느끼셨는지 불쑥 분갈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빠말씀처럼 꽃나무들이 지난 겨울동안 부쩍 커서 화분이 너무 좁아 보였다.
“그래요. 당장 해요 아빠.”
나는 수선스럽게 앞장을 서서 꽃삽을 집어 들었다. 아빠와 꽃나무를 돌보는 일은 언제 해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 이 난도 갈아 줘야 하고... 이 나무도...”
아빠와 나는 화분을 일일이 뜰에 내다 놓으며 분갈이 할 것들을 골라내었다. 그렇게 고른 화분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그래그래 조심해서... 잘못 다루면 깨지니까.”
아빠는 화분들을 소중히 다루시며 내게도 주의를 주셨다. 나도 무슨 보물을 만지듯이 조심해서 화분들을 옮기었다. 그 덕분에 단 한 개의 화분도 깨뜨리지 않고 잘 옮길 수 있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꽃나무들을 원래의 화분에서 끄집어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일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고 힘든 일이었다.
나무줄기를 잡고 뽑아내자니, 흙 속에 엉긴 잔뿌리들이 다칠 염려가 있었고, 꽃삽으로 파내려 하니 화분이 너무 작아서 삽을 들이 밀 수조차 없었다.
“하하하. 우리 공주님이 악전고투 중이시고만.”
내가 화분을 들고 낑낑대는 꼴을 보시곤 아빠가 크게 웃으셨다. 그리고 화분 다루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조심하지 않으면 뿌리들을 다칠 염려가 있단다. 그러니 화분으로부터 꽃나무를 빼낼 때는 꽃나무만 빼낼 생각하지 말고 흙과 함께 몽땅 빼야 한단다.”
아빠는 손가락을 꽃나무 밑 둥에다 끼우시고는 화분을 뒤집으셨다. 그리고는 화분의 밑 둥을 두어 번 치셨다.
“자, 이렇게 하고는 화분을 살며시 들어 올리면 된단다.”
아빠는 내 쪽을 바라보시며 화분을 잡아 올리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흙과 꽃나무는 고스란히 아빠 손위에 얹혀져 있고 화분만이 떨어져 나왔다.
“와! 정말 대단하네! 어쩜 그렇게 깨끗이 빠져 나올 수 있지?”
나는 한동안 잔뜩 입을 벌리고는 그 신기한 과정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이며 여러 개의 꽃나무로부터 삽시간에 화분을 벗겨 내었다.
“나도 해봐야지!”
나는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작은 화분을 들고 아빠가 하시는 대로 따라 해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분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아빠가 하실 때에는 두어 번만 화분을 두드려도 쏙쏙 잘 빠져 나왔는데, 내가 할 때는 아무리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꼭 화분이랑 흙을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어허! 그건 흙이 너무 굳어서 잘 안나오는 구나. 간혹 그런 것들이 나오지... 그건 웬만해서는 빼낼 수 없단다.”
아빠는 내가 하는 양을 보시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에이 참! 하필이면 이런 것을 제일 먼저 잡게 되었담!”
나는 퉁명스럽게 투덜거리며 화분을 거꾸로 뒤집어 마구 흔들었다. 그래도 화분은 끄덕도 안했다. 그때 화분 밑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물 빠짐 구멍이었다.
‘여기로 흙을 밀어주면 빠져나오지 않을까?’
나는 손가락을 구멍 안에다 넣고 꾹 눌러 보았다. 그러자 미동도 않던 꽃나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와아! 아빠 내가 해냈어요. 흙이 빠졌다고요.”
나는 그 화분을 들고 신나서 외쳤다. 그러자 아빠는 싱긋이 웃어 보이셨다. 그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는 표정이셨다.
나는 약간 민망하고 실망스러워서 털썩 주저앉았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수선을 떤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치 이!”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발을 꼼지락거리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빠는 또 다른 화분을 들고 작업 중 이셨다. 제법 큰 화분이었다.
계속 손쉽게 화분을 다루시던 아빠가 이번에는 꽤 힘겨워 하시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분이 너무 커서 뒤집거나 번쩍 들어 올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멍하니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좀더 쉽게 화분갈이를 할 수는 없을까?’
나는 계속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해보았다. 그때 좀 전에 작은 화분을 통해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만약 화분 밑을 통해 흙을 밀어 줄 수 있다면.’
나는 한참 생각 끝에 무릎을 탁 쳤다.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빠. 알아냈어요. 화분갈이를 쉽게 할 방법이 떠올랐다고요.”
나의 소란에 아빠가 놀란 듯 일손을 멈추셨다.
“화분 밑을 완전히 분리해 두는 거여요. 그러니까, 화분 밑에 아주 커다란 구멍을 뚫고, 그 구멍보다 약간 큰 동그란 판을 만드는 거죠. 나무를 심을 때는 그 판을 화분 안에 넣어서 밑을 받치면 되고, 화분 갈이를 할 때는 그 판을 밑에서 눌러 주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화분 안에 담긴 흙들이 판에 밀려 나오지 않겠어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설명하였다.
“오호! 그것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우리 공주님이 제법인걸!”
아빠는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띠시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정말 편리하고 멋진 화분이 되겠다.”
아빠는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칭찬해주셨다. 칭찬을 받으니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늘 높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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