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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건전지 끼우는 기구
“흐 흐흐흐...”
절로 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어른들이 말하는 승리의 웃음이 이런 것인가?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꼭 가리고 있어야 했다.
“너 오늘 이상하다. 무슨 좋은 일 있니? 아까 전부터 실실 웃는 것이 영 이상한데?”
여우같이 눈치 빠른 미진이가 얼굴을 쑤욱 내밀었다.
“기분 좋은 일? 있지! 암 있고말고!”
“뭔데? 나도 좀 알자. 왜, 빵이라고 숨겨뒀니?”
미진이는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지 계속 발을 굴렀다. 그런 미진이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비밀을 말해버리고 싶어 계속 조바심이 났다.
“말해줄까?”
“그러지 말고 말해줘. 궁금해 죽겠다.”
“그럼 좋아. 하지만 비밀이다.”
“그래 알았어.”
나는 미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찍은 후에야 천천히 내 보물을 책상 밖으로 꺼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미진이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의 보물이 무언지 어지간히 궁금했는가 보다.
“짜 자잔! 어때 멋있지. 초강력 건전지! 이걸로 오늘 과학 시간의 스타가 되겠다 이거야.”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침내 나의 과학 준비물을 모두 꺼내 놓았다. 자랑스러운 슈퍼 건전지.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았다.
“애 게게 겨우 이거야? 정말 한심 하군...”
“한심? 이 슈퍼 건전지가?”
정말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놀라서 호들갑을 떨 줄 알았던 미진이가 코웃음을 치다니! 이건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얘들아! 이리 좀 와봐라. 우리의 맹구 씨가 또 일을 저질렀다.”
미진이의 호들갑에 모여든 친구들도 나의 건전지를 보더니 킥킥 웃어대기 시작했다.
“저 녀석 무엇이든지 큰 게 최고인줄 아나봐.”
“야야. 이 보게 이 건전지는 건전지 끼우는 기구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네. 오늘 과학 시간도 여지없이 관람만 하시겠군.”
웃음 섞인 친구의 놀림을 듣는 순간에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나의 건전지는 크기가 터무니없이 커서 실습용 건전지 끼우는 기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그렇게 중대한 사실을 이제 서야 깨닫다니! 난... 난 정말 바보야!’
정말 내 자신이 미워졌다. 그리고 너무나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자, 이젠 병렬을 공부해 볼까요?”
“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들 건전지를 바꾸어 끼우고 전선을 옮기고, 열심히들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슈퍼 건전지 때문에, 아니 너무나 작은 건전지 끼우는 기구 때문에 너무나도 재미없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휴!’
나는 미진이의 실험을 보다말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의 실험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큼 재미없고 따분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구름이나 보면서 노는 게 낫겠다. 어디 보자. 햐! 저건 꼭 돼지같이 생겼네!’
딸기같이 생긴 구름, 코끼리 같은 모양의 구름, 공작 꼬리 같이 멋있는 새털구름 등등 하얗고 몽실몽실한 구름들이 떼를 지어 파란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네. 어어! 아까 고래같이 생겼던 구름이 이젠 만두로 바뀌었네. 정말 제멋대로 늘어났다가 줄어드는구나. 내 건전지 끼우는 기구도 그렇게 변하면 재미있을 텐데...’
나는 혼자 씨 익 웃었다.
‘늘어나는 건전지 끼우는 기구라... 가만, 만약 고무 같은 것으로 건전지 끼우는 기구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큰 건전지에는 잡아 늘리기만 하면 되고...’
갑자기 봇물 터지듯 생각이 줄줄이 이어졌다. 늘어나는 건전지 끼우는 기구와 하늘의 구름... 정말 멋진 생각 같았다.
“이 맹구! 넌 수업시간에 왜 딴 짓을 하고 있니? 하늘에 건전지가 있기라도 하니?”
선생님의 노여움 섞인 목소리였다. 수업 시간 내내 하늘만 보고 있었으니 혼이 나도 단단히 날 것 같았다.
‘그래! 혼이 날 때 나더라도 내 생각을 말씀드리자. 그러면 혹시 혼이 덜 날지도 모르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사실은 새로운 건전지 끼우는 기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의 구름처럼 늘어나는 건전지 끼우는 기구가 있다면 저 같이 멍청하게 수업시간을 빈둥거리는 학생은 없을 겁니다.”
나는 정신없이 술술 내 생각을 읊어나갔다. 눈앞이 하얗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
한참 후, 겨우 말을 마치고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흐음 좋다. 수업시간에 딴청을 피우긴 했지만, 좋은 아이디어구나. 이번만은 용서해주마. 그러나 다음엔 어림없어!”
선생님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쳤다.
“하하하! 맹구 대단한 걸? 우리를 하루에 두 번이나 놀라게 하다니!”
“축하한다. 맹구야. 드디어 소원대로 스타가 됐다.”
“하하하!”
일시에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시작은 나쁘지만 끝이 좋은 하루. 오늘따라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였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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