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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단 선풍기
정말 무지무지 더운 날이었다. 태양은 심술 맞게 햇볕을 마구 내리 쪼이고 바람은 어디에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 강아지는 그늘에 배를 깔고 누어서 혀를 내밀며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화단에 심은 채송화도 햇볕이 싫은지 커다란 나무 틈새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나 또한 마루에 대자로 누어서 연신 부채질만 해대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해님을 한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덥고 더운 날 한대 밖에 없는 선풍기를 누나가 독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 집은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단 한대 밖에 없다. 그래서 날이 더워지면 우리 식구는 치열한 선풍기 쟁탈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이 쟁탈전의 결과는 같게 마련이다. 매번 나이가 많은 사람 순으로 사용권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찍 소리도 못 내고 땀이나 흘려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적으면 더위도 모르는 줄 아나? 누나나 형은 심하다!
나는 마루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냉장고나 기웃거려야 했다.
“에이 참!”
나는 부채를 저만치 내던져 버리고는 누나의 방문 쪽을 노려보았다. 한참이 되도록 인기척이 없는 것이 아무래도 누나가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으면 십 분이 멀다하고 냉장고로 들락날락 했을 텐데 지금은 거의 한 시간이 되도록 꼼짝도 않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방문께로 다가갔다. 방문 안쪽에서는 낮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흐흐흐 이때다.’
나는 누나가 잠든 틈을 타서 선풍기를 빼내기로 작정하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누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방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선풍기를 움직였다. 그런데 선풍기는 내 맘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나는 애가 바짝바짝 탔다.
보통 때에도 선풍기를 옮기려면 꽤 힘이 들었는데, 그것을 소리 내지 않고 하려니 더 힘이 드는 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선풍기를 안아들고 겨우겨우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 누나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선풍기 바람을 쐬니 좀 더위가 누그러졌다. 목 줄기에 흐르던 땀도 멈추었고 머리속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사방이 조용하고 그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자니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선풍기는 다 좋은데 옮기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단 말이야.’
나는 선풍기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 집같이 한대의 선풍기로 온 식구가 번갈아가며 쓰는 집은 선풍기를 이리저리 옮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선풍기는 나 같은 꼬마나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들이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하면 좀더 쉽게 옮길 수 있을까?’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 맞아! 선풍기의 밑에 바퀴를 달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만 밀어도 쉽게 움직일 거야.”
나는 롤러스케이트의 원리를 떠올리며 손뼉을 쳤다.
“그래! 당장 해보자. 뒤뜰에 망가진 롤러스케이트도 있지!”
나는 당장이라도 내 생각을 실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무거운 선풍기를 이끌고 뒤뜰로 갔다.
“자, 바퀴를 여섯 개나 달았으니 튼튼할 거야.”
나는 롤러스케이트에서 떼어낸 바퀴를 선풍기 밑에 부착시키고는 슬쩍 밀어 보았다. 그랬더니 선풍기는 저만치 스르르 움직여갔다.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야호! 해냈다!”
나는 신이 나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며 선풍기를 끌고 마루께로 갔다. 문 앞에는 언제 오셨는지 엄마, 아빠, 형이 서성이고 계셨다. 내가 뒤뜰에 있는 동안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형 이것 봐라!”
나는 반가운 마음에 내 발명품을 자랑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난데없이 주먹이 날아와서 내 머리통을 세게 내리쳤다.
“이 녀석! 식구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선풍기하고 막내가 같이 없어졌다고 온 동네를 다 뒤지며 찾아 다녔다!”
누나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도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나 보다. 그런데 나는 노래까지 부르면서 느릿느릿 나타났으니...
나의 죄는 내가 바퀴달린 선풍기를 소개하자 가까스로 풀렸다. 오히려 아빠와 엄마는 내가 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해 주시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내는 여전히 슬프기만 하다. 다른 발명가들은 자기의 발명품을 소개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는데, 왜 나는 아직도 내 맘대로 선풍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인가?
정말 막내는 슬프다. 아!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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