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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샤워기
“비 좀 안오나?”
철민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노려보았다.
“야! 비 오면 뭐가 좋냐? 괜히 놀지도 못하잖아!”
작은 꽃삽을 쥔 손을 열심히 놀리면서 영훈이가 생End맞게 대꾸했다.
“너무 더우니까 하는 말이지. 누가 곰 아니라고 할까봐 저렇게 미련하게 구냐?”
철민이는 입을 쩝쩝 다시며 다시 고개를 땅에 쳐 박았다. 아닌 게 아니라 숨이 막히도록 더운 날이었다.
“아! 찬물로 시원하게 목욕했으면 좋겠다.”
철민이는 비 맞은 중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과히 넓지 않은 텃밭에 철민이와 영훈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잔뜩 웅크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의 과학숙제로 우리는 식물관찰 기록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 뒤 뜰의 작은 텃밭을 관찰시험장으로 정한 것이다.
처음에 모종을 나누고 텃밭에 경계를 만들 때는, 우리는 서로 욕심을 내어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고, 더 빨리 심으려고 경쟁도 하였다.
“두고 보라고! 여기서 멋지게 호박을 길러서 학교에 낼 테니까!”
영훈이는 제 몸집만큼이나 큰 삽을 휘두르며 큰 소리까지 쳤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감은 심술 맞은 해가 높이 솟아오르면서부터 점점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아래서 모두들 묵묵히 삽질만 했고, 나도 괜히 짜증을 부리곤 하였다.
고추 모종이 자꾸 쓰러지는 것에 짜증이 났고, 강낭콩 심은 간격이 일정치 않아 화가 났다. 나는 괜히 꽃삽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씩씩거렸다.
“아이 구! 난 못하겠다. 방학숙제고 뭐고 더 이상은 못하겠어.”
나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 오랫동안 쪼그린 채로 일을 했더니 무릎이 시큰거렸다.
“나도!”
철민이도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자식들 그 정도 가지고 뭐가 힘들다고...”
커다란 엉덩이를 치켜들고 열심히 고랑을 만들던 영훈이가 일손을 멈추고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영훈이의 얼굴에는 인디언 추장처럼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후 하하! 저 녀석 좀 봐!”
철민이가 영훈이를 보더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네 얼굴 좀 봐라.”
나도 따라 웃으며 영훈의 얼굴을 가리켰다. 어리둥절하여 눈을 굴리던 영훈이 제 얼굴을 손으로 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황토 흙이 볼 가득히 묻어났다.
“깔깔깔.”
철민이는 더욱 큰소리로 웃어댔다.
“하하하.”
멋 적은 표정을 짓고 있던 영훈이가 그제 서야 우리를 따라 웃었다. 우리가 웃는 이유를 알아챈 것이었다.
“좀 씻어야겠다. 일도 대충 마친 것 같은데, 씻고 쉬자!”
문득 웃음을 멈추고 철민이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래 그것 좋지. 찬물로 좀 씻자. 이대로 있다가는 햇볕아래 통구이가 되겠어!”
영훈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수돗가로 달려갔다. 텃밭에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낡은 수도꼭지가 불쑥 솟아 있었다.
“쏴아!”
수도꼭지를 비틀자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그 물을 서로에게 뿜어대며 장난을 쳤다.
“야! 차가워!”
철민이는 진저리를 치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물이 너무 세게 나와서 섬뜩하다. 샤워꼭지라도 있으면 좋은데.”
“샤워꼭지?”
나는 철민이를 쳐다보다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텃밭 구석에 놓인 비닐봉지와 고무줄이 눈에 띄었다.
‘비닐봉지와 고무줄이라...’
나는 호스와 비닐을 번갈아 보다가 손뼉을 딱 쳤다.
“하하하! 샤워꼭지라고 했지? 이 형님이 근사하게 만들어 주마.”
나는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
“잘 봐! 머리는 이렇게 쓰는 거야.”
나는 호스의 끝에다 비닐봉지를 야무지게 씌우고 고무줄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는 송곳으로 비닐봉지에다 몇 개의 구멍을 뚫었다.
“자, 이제 다 됐다. 물을 틀어봐.”
나는 멍하니 서있는 영훈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쏴아!”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스 끝에서 물줄기가 국수가닥처럼 뻗어 나왔다.
“야! 정말 간단하게 샤워기가 만들어졌네.”
“간단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힘주어 말했다.
“바로 그거야.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발명하는 자세라고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어.”
해를 등지고 서서 물을 뿌리며 철민이가 소리 높여 말했다. 그때 우리 앞에 작은 무지개가 떠올랐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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